이웃나라 중국에 관한 책은 시중에 너무나도 많이 있다. 단편적인 정보도 구글이나 각종 검색 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막연하게 ‘중국은 이렇더라’ ‘중국 사람들은 이렇다더라’ 하며 다 아는 것처럼 느끼는 중국이지만 막상 누군가 ‘중국사람들은 왜 그런 거죠?’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토니, 중국을 생각하다》를 쓴 저자 토니 리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동포 출신 마케팅 컨설턴트다. 미국보다 중국에 흥미를 느껴 건너간 중국에서 20년을 지냈다. 책은 그 20년 동안 스무 차례에 걸쳐 사업을 시작하고 열세 번의 성공과 일곱 번의 실패를 거친 저자의 ‘중국 생존기’다. 저자는 “내가 중국에서 몇 년을 살아봤는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중국 전문가들의 권위에 의지한 중국론과 완전히 반대에 서 있다. 책은 막연히 알지만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던 ‘대륙’의 역사, 문화, 전통, 사회풍조를 질의응답식으로 엮었다.
질문은 노골적이다. ‘중국인들은 잘 씻지 않는다는데 패션 감각은 어떻습니까’, ‘중국인들의 성문화는 어떤가요’, ‘중국 화폐엔 왜 마오쩌둥밖에 없습니까’, ‘중국인들은 왜 그렇게 시끄러운가요’, ‘중국 사람들은 실제로 공산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등이다. 모두 평소 궁금했지만 중국 전문가 중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 망설여지는 질문들이다. 저자의 답변은 Q&A(Question&Answer·질문과 답변)가 아니라 Q&R(Question&Response·질문과 응답)로 이뤄진다. 독자가 가장 궁금할 것 같은 질문을 던지고 정확한 해답 대신 그가 느낀 ‘솔직한 응답’을 제시한다.
단순히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부분은 책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필요한 중국식 비즈니스 마인드를 일깨워준다. ‘만만디(慢慢的)의 유래와 의미’, ‘관시(關係)가 생겨난 배경과 맺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중국 소비자들의 특징, 중국에서 성공한 외국 기업의 비결, 중국 전자상거래의 미래 등 중국 시장에 대한 ‘깨알 팁’도 던져준다. 책 전체 분량은 400쪽에 달하지만 각 챕터를 2~3쪽으로 잘게 나눠 놓았고 지식서가 아닌 경험서답게 저자가 옆에서 이야기하듯 짧고 간결한 문체로 써 읽기에 어렵지 않다.
“성공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부유한 부모 밑에 태어나는 거죠. 주위를 둘러봐요. 승자들은 죄다 특권층 출신이잖아요.”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자인 닐 파텔이 성공적인 기업 운영과 관련한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한 여성이 쏘아붙였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같은 아이비리그 학력, 케네디 가문과 같은 정치적인 혈통, 도널드 트럼프 같은 부자 아버지도 없다면 매일 아침 지하철로 출근하며 무기력한 생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선의를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왜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할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파텔은 또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인 패트릭 블라스코비츠, 미디어 컨설턴트인 조나스 코플러와 함께 《허슬, 멈추지 않는 추진력의 비밀》로 이에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허슬(hustle)은 ‘흔들다’라는 의미의 네덜란드어(hutselen)에서 유래해 ‘떠밀다’ ‘재촉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저자들은 이 단어를 ‘목표를 향한 결단력 있는 움직임’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목표를 탐색하고 언제든 그것을 향해 달려가려는 결단력이다. “그 움직임 자체가 행운을 만들어 내고 숨어 있던 기회를 드러내 보여주며 우리의 삶을 더 많은 돈과 의미, 추진력으로 충전시킬 수 있다”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책은 크게 1부 마음, 2부 머리, 3부 습관으로 구분돼 있다. ‘마음’편에서는 왜 우리가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지, 어떻게 무력감·공허감에 빠져버렸는지 살펴본다. 지나친 리스크(위험) 회피 성향 때문에 잘못된 목표를 조준하는 경우를 다이어트 콜라 이야기로 풀어낸 대목이 눈길을 끈다. ‘뚱뚱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위안을 얻으려 수시로 다이어트 콜라를 들이켜지만 ‘건강해지는 것’과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들은 “실천의 부족, 실패를 회피하려는 소심함은 예외없이 사람들을 자기 파괴의 절벽으로 내몬다”며 “실패 회피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라고 지적한다.‘머리’편에서는 꼬여버린 삶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는 길, 자신의 꿈을 갖고 그를 향해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는 전략을 안내한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스트레스가 없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책에서는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작은 고통은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적은 양의 스트레스는 미래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키우고 복잡한 도전을 예상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조언한다.책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습관’편에서는 마음에 익히고 머리에 새긴 내용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탐색한다. 회사의 성장성을 인정받고 자금조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기업공개(IPO)처럼 개인도 기회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그것을 ‘개인적 기회 포트폴리오(personal opportunity portfolio)’라고 명명한다. POP를 구성하는 요소는 능력을 이끌어내는 ‘잠재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사람’,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 과거 성공의 기록·평판 등을 의미하는 ‘증거’ 등 네 가지다.POP를 만드는 것 외에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한 가지 습관’으로 소개한 ‘10분 법칙’도 챙겨볼 만하다. 10분 법칙이란 묻지도 따지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일단 10분만 몸을 움직여보라는 것이다. 소파에 누운 채 운동하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내일 아침 발표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대신 해야 하는 것을 바로 함으로써 실행력을 높이고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실행할 때보다 상상할 때 훨씬 고통이 크다”는 문장이 공감을 높인다.‘남의 꿈을 이뤄주려 출근하지 마라’ ‘열정에 속지 말고 재능에 착각 말자’ ‘행운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이다’ ‘가장 빠른 길은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 ‘돈은 추진력의 연료이자 도구다’ 등 목차의 문장들 자체가 하나의 지침으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경제·경영서 《머니》나 《부의 추월차선》처럼 저자가 자수성가한 젊은 부자들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돈과 부의 중요성뿐 아니라 삶의 의미, 추진력의 가치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젊은이들답게 가벼운 필체와 거침없는 유머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영화 ‘신과함께-인과연’이 흥행 신기록을 세우면서 연일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영화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적인 사랑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영화에 열광하게 됐을까. 조선에 활동사진(영화)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90년대 말로 추정되지만 상영관을 설치해 제대로 운영한 것은 1903년 한성전기회사가 동대문 안 기계창에 만든 동대문활동사진소가 시초였다. 당시 활동사진은 스토리가 있는 영상이 아니라 외국의 자연과 진기한 신문물, 사건 등의 영상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그런데도 동대문활동사진소와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이 설치한 최초의 극장 협률사 등에는 활동사진을 보러 온 남녀노소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황성신문은 전했다.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한편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유성영화가 등장한 1920년대 이후엔 그 열기가 더했다. 1930년 당시 경성(서울)에는 10여 개의 상영관이 있었는데 상영관별 연간 관객이 2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시 경성 인구 70만 명이 연간 3회 이상 극장을 출입했다는 얘기다. 즐길거리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때였으니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참 대단한 관람 열기였다.《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관중》은 일제강점기 시각문화가 관람, 매체, 전시 시설 등을 통해 공공화하고 대중화하는 양상과 이를 소비하는 관중의 출현을 다룬 책이다. 공진회 박람회 등 공공적 관람 제도의 등장, 도시 경관의 재형성, 미술관과 갤러리의 등장, 간판·쇼윈도·영화관 등 상업공간의 발달 등과 더불어 근대적 관중이 어떻게 탄생하고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경성을 주된 대상으로 한 것은 일제에 의한 식민지 수탈의 중심이자 이른바 ‘문명개화’의 근대를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일제는 전근대사회였던 조선에 근대적 문명을 이식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각종 근대적 시각문화를 급속히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이를 위해 박람회, 전시회, 극장, 갤러리 등의 공공적 관람시설, 즉 공람시설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주로 소규모에다 실내에 머물던 관객들을 대규모 공공장소로 끌어낸 것은 박람회였다.조선에 본격적인 대규모 공람시설이 등장한 것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근대 일본의 문명개화와 물산을 선전하려고 1907년에 연 ‘경성박람회’였다. 9월1일부터 45일간 지금의 을지로입구인 구리개 대동구락부 자리에서 열린 경성박람회에는 무려 9만9000여 점이 출품됐다. 일제는 관람객 유치를 위해 매체를 통한 홍보, 각종 할인 등의 지원책 등을 써가며 열을 올렸다. 그 결과 당시 경성의 전체 인구에 가까운 20만여 명이 박람회를 관람했다. 하지만 전시품의 94%는 일본인이 출품했고 조선인이 낸 전시품은 그나마도 1차 산업 위주여서 일찍 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조선의 산업적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여줬다. 결국 경성박람회는 일본의 상권과 자본이 경성에 침투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책은 지적한다.1915년 9~10월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총독부의 통치 5주년을 맞아 식민권력이 통치와 훈육의 시선으로 연출한 행사였다. 공진회를 위해 경복궁 근정전 앞 홍화문과 영제교가 헐리는 등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이던 많은 표상물이 해체돼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문명화된 근대적 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공진회 관람객은 116만여 명. 경성에서만 19만 명 가까이 관람했다. 경성부민 25만 명 중 병자와 노약자, 유아를 빼고는 다 봤다고 한다. 일제는 1929년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조선박람회’로 또 한 번 식민통치의 성과를 과시했다.1920~1930년대 일본인 중심의 남촌 지역에 들어선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다 백화점과 조선인이 운영하던 동아백화점, 화신백화점 등의 쇼윈도는 경성의 시각 이미지를 바꿔놓은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쇼윈도는 욕망의 진열장이자 물신(物神)이 거주하는 ‘상품의 신전’이었다. 하지만 같은 경성에서도 남촌과 북촌의 쇼윈도에는 차이가 현격했다. 또한 부자와 빈자, 도시인과 시골 사람, 소비자와 노동자의 차이를 민감하게 내포한 장소였다. 이 밖에 신문과 잡지 등 인쇄매체의 삽화와 사진, 그림 등을 통한 시각 이미지의 변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이 책은 한국미술연구소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형성된 시각문화의 근대적 성격을 조명한 ‘한국근대미술 시각이미지 총서’(전3권)의 1권이다. 일제강점기 미술가 양성과 등용 및 활동을 살펴본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창작》, 대중매체의 광고와 만화 속 의식주 관련 복제 이미지를 통해 당시 서울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재구성한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일상》도 함께 출간됐다.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시골에 살던 소년은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마차가 다니던 고향과 달리 서울의 주요 교통수단은 전차였다. 전차를 타면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몰라 늘 불안했다. 어느 날 모든 전차는 동대문을 지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는 길을 잃어도 동대문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공포가 사라졌다. 스스로 한 발견은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아이디어로 길을 열다》에서 저자는 “이 경험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방향등이 됐다”며 “어떤 문제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그 문제만의 ‘동대문’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1938년생인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행정대학원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상공부와 재무부 등 정부 경제부처에서 나라의 수출진흥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일에 참여했고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창업투자 사장 등을 거쳐 퇴임한 뒤에는 여러 공·사기업에서 감사, 사외이사로 활약했다. 책은 45년간의 직장생활에서 고비마다 자신만의 ‘동대문’을 찾은 경험의 기록을 담았다.상공부 수출진흥과에서의 성과 및 신용보증기금 출범 창립 멤버로 참여해 경험한 위기와 보람뿐 아니라 한국에서 벤처 붐이 일기 시작할 시기에 벤처캐피털 사장을 맡아 처음 영화산업에 투자한 일화가 눈길을 끈다. 1994년 아마겟돈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신보창업투자가 투자를 결정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투자해온 관행을 깨고 벤처캐피털이 국내 최초로 영화산업에 투자한 것이다. 저자는 “‘창투사’답게 ‘벤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위험)가 따르고 이를 감당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영화는 20만 명의 관객이 들며 화제를 모았지만 11억원의 손실을 냈다. 하지만 그 투자는 영화를 주요 산업의 하나로 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영화업계의 자금조달 방법이 바뀌면서 문화적, 경제적 파급 효과도 컸다.풀무원 감사 시절에는 창업자인 사장이 제안한 계열사 지원을 이사회에서 무산시켰고, SK 사외이사로 재직할 당시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든 포스코의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방안을 이사회에서 토론을 통해 철회시키기도 했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외이사, 토론이 가능한 기업문화는 개인의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조직의 힘이다. 저자는 “아이디어만큼 중요한 것이 조직 그 자체”라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실패할 자유’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1960년 이후 한국 경제의 격동기를 보낸 치열한 경험을 ‘평범한 직장인의 기록’이라는 겸손한 책 소개로 대신한 저자는 퇴임 후에도 초등학생들에게 경제교육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