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미국에서 20만 부가 팔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 언급된 정유정의 《종의 기원》….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출판 에이전시인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사진)가 해외 판권 판매를 맡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최근 영미권에 수출된 한국문학 작품의 90% 이상은 이 대표 손을 거쳤다. 그가 지금까지 수출을 성공시킨 작품만 1000종이 넘는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역시 영미권에 소개하려고 분투했던 그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7일 서울 삼선동1가 KL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10여 년 전엔 1년에 한 작품만 영미권에 소개해도 큰 성과라고 했는데, 요샌 한국문학을 찾는 외국 출판사가 부쩍 많아지면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구체적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 "해외선 장르 작품 인기인데… 국내문단은 B급 문학 취급"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2005년만 해도 한국문학은 세계 시장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 출판 에이전시들은 ‘어떤 외국 책을 한국에 들여와야 잘 팔릴까’를 고민하던 때였다. 그는 반대로 ‘어떤 한국문학 책을 외국에 소개하면 먹힐까’를 고민했다. 콧대 높은 영미권 출판사들은 그를 만나주기조차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굳이 들어보지도 못한 한국 작가의 책을 출판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으니 ‘관심 없다’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이미 계획 중이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죠.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어요.”

그래도 이 대표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한국외국어대와 경희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영미문학과 한국문학을 수도 없이 읽었고, 문학 이론도 공부했다. 각 문화권에서 인기가 높은 문학 작품 스타일을 분석하면서 차츰 국내 문학 작품을 해외에 가져갔을 때 차지할 수 있는 위치를 가늠하는 안목도 갖추게 됐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미국에서 출간되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감’을 믿고 7년간 꾸준히 영미권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책을 권한 끝에 나올 수 있었던 성과였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조금씩 호응을 얻게 될수록 이 대표는 국내 문단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순문학’만 고급문학으로 쳐주고 장르문학은 등한시하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해외에서 선호하는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 “한국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엄격히 나눕니다. 평론가나 신문사의 문학 담당기자들은 ‘장르문학’을 은근히 B급 문학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선 장르를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에요.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국에서도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나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