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쥐보다 세포수 1만배 많은 코끼리, 에너지는 1000배만 더 쓰는 까닭
영화로 유명한 ‘슈퍼맨’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8년 출간된 동명의 만화를 통해서였다. 만화 첫장에는 아기 때 크립톤 행성에서 왔다는 슈퍼맨의 엄청난 능력과 함께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여놨다. “현재 우리 세계에도 엄청난 힘을 지닌 생물이 있다. 하등한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수백 배를 들어올릴 수 있다. 메뚜기는 사람으로 치면 도시 블록 몇 개를 건너뛰는 것만큼의 거리를 뛴다.” 맞는 말일까. 답은 ‘아니오’다. 크기가 두 배로 늘면 힘도 두 배로 커진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책마을] 쥐보다 세포수 1만배 많은 코끼리, 에너지는 1000배만 더 쓰는 까닭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400여 년 전에 이를 과학적으로 논증했다. 그는 《새로운 두 과학에 대한 논의와 수학적 논증》이라는 책에서 면적과 부피가 어떻게 늘어나는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면적은 길이의 제곱에 비례해 증가하고,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해 증가한다.’ 그러면서 “사람이나 말 같은 동물들이 엄청나게 커진다면, 형태를 유지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뼈대 구조를 구축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예컨대 건물이나 나무가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키가 10배로 커진다면 무게는 1000배 늘어나는 반면 그 무게를 떠받치는 기둥이나 다리의 힘은 100배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미는 자기 몸집에 딱 맞는 힘을 지니고 있고, 인간도 그렇다는 얘기다.

이론물리학자이자 ‘복잡계 과학’의 대부로 통하는 제프리 웨스트 미국 샌타페이연구소 교수는 《스케일》에서 생물의 크기와 생리적 특징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어느 포유동물이든 심장이 평생 뛰는 횟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생쥐는 겨우 2~3년밖에 못 살고 코끼리는 75년까지 살지만 평생의 심장 박동 수는 약 15억 회로 비슷하다. 코끼리는 몸무게가 쥐보다 1만 배 더 무겁지만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대사율)는 쥐의 1000배밖에 되지 않는다. 코끼리의 세포 수는 쥐의 1만 배나 되지만 에너지는 10분의 1만큼만 쓴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저자에 따르면 동물의 몸집이 2배로 늘어날 때 대사율은 100%가 아니라 4분의 3인 75%만 증가한다. 크기가 배로 늘어날 때마다 사용하는 에너지는 25% 절약된다는 뜻이다. 코끼리의 에너지 효율이 쥐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다. 저자가 ‘스케일링 법칙’이라고 명명한 이 법칙은 포유류는 물론 조류, 어류, 갑각류, 세균, 식물, 세포까지 거의 모든 생물군에 다 적용된다. 몸집과 대사율만이 아니라 성장률, 심장 박동 수, 진화 속도, 유전체 길이, 미토콘드리아 밀도, 뇌의 회색질, 수명, 나무의 키, 심지어 잎의 수에 이르기까지 거의 비슷한 규칙에 따라 증감된다.

생물학자 마르크스 클라이버가 처음 발견한 이 법칙을 저자는 개별 생물종을 넘어 전체 생태계와 기업, 도시 등으로 확장한다. 생물계에서 발견한 법칙이 사회적 유기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동식물, 인간의 몸, 종양, 기업 등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크고 작은 세계가 조직되고 기능하는 방식은 비슷하다며 각 분야를 아우르는 대통합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도로 복잡한 모든 현상의 밑바탕에는 공통된 개념구조가 있으며 동물, 식물, 인간의 사회적 행동, 도시, 기업의 동역학, 성장, 조직체계가 사실상 비슷한 일반법칙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시와 기업에는 어떤 스케일링 법칙이 적용될까. 도시는 규모가 배로 커질 때 적용되는 지수가 0.75인 동물과 달리 0.85가 적용된다. 예를 들면 도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날 때 필요한 도로, 전선, 가스관, 주유소 등 기반시설의 양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85%만 증가한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인구가 두 배가 될 때마다 특허 수, 국내총생산(GDP), 임금 등 사회경제적 부산물은 두 배보다 15% 더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도 작용한다. 독감 환자나 범죄 건수, 오염 같은 부정적 지표도 똑같이 두 배보다 15% 더 늘어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앞으로 지구는 ‘인류세’를 넘어 ‘도시세’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뿐만 아니다. 스케일링의 법칙은 건물, 다리, 배, 항공기, 컴퓨터 등 공학적 산물들과 기계를 설계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슈퍼맨이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도 이 법칙 때문이다. 저자는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사진)’를 실존 생명체로 만들려면 키가 106m, 몸무게는 2만t에 이르고 하루에 약 25t의 먹이를 먹어야 하며 대사율이 2000만 칼로리에 달해 인구 1만 명의 소도시에 필요한 식품과 맞먹는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약 100t에 이르는 심장이 1분에 두 번 남짓 뛰면서 인간과 비슷한 혈압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큰 동물일수록 심장 박동이 느리고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자연계든 인간세계든 복잡한 세계를 잘게 쪼개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전모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세계를 이해하는 폭넓고 과학적인 기본틀, 즉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할 ‘대통일 이론’의 필요성을 ‘스케일’이라는 관점에서 제기하고 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