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감각을 키우면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보인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 이 소설 주인공 소년 ‘나’는 한 누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몸은 더 타오른다. 사랑이 이토록 힘든 것은 내가 하는 말과 내 몸이 원하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알고 ‘생각’하는 것보다 느끼는 ‘감각’에 더 강하게 이끌리는 것이다. 소년은 이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생각의 속임수》는 삶을 지배해 온 생각과 그 아래 꿈틀대는 감각의 이중구조를 살펴보고 심리적·문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문학평론가 권택영이다. 그는 미국 네브래스카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라캉, 프로이트 등의 다양한 정신분석 사례를 1990년대 국내에 소개했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속임수를 품고 있다”고 강조한다. ‘생각하기’는 ‘기억하기’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되새기는 게 아니다. 어렴풋한 추억을 더듬는 것이다. 그는 기억을 이렇게 비유한다. “이 색 저 색 이어붙인 넝마를 꼭 끌어안고 먹을 것을 내던지는 늙은이, 물구덩이고 진흙바닥이고 아무 데나 철썩 주저앉는 개, 쓸모없는 지푸라기다.”

이 기억에 의존하는 생각만을 반복하기보다 감각을 더 키우자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속임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 느낌의 영역으로 들어가 감각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동안 숨어 있던 키 작은 감각이 자라나 비로소 나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동물적 감각은 사랑에 빠졌을 때는 몸집을 불리고 사랑이 끝나면 몸집을 줄인다.”

타인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뇌는 양적으로 풍부하던 어떤 기간은 전혀 기억 못하기도 한다. 대신 누군가와 친밀하던 시간을 뇌에 깊숙이 새겨넣고 회상하며 자꾸만 부풀려간다. 타인에 대한 친근감이 없다면, 당시 일어난 일들은 기억에 저장되지 않고 흩어져 버린다.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단편 《정글 속의 짐승》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주인공 마처는 고독한 성에 갇힌 인물이다. 가족과 친척이 없는 그는 10년 전 함께 시간을 보낸 여인 메이와 우연히 마주친다. 지난 10년간 서로 이외에 단 한 명도 사귀지 않았던 그들은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지나치게 오래 고립돼 있었던 탓에 상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런 감정을 숨긴다.

물론 생각과 감각은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쌍두마차다. 하지만 이성적 생각에만 집중하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발견할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성공적인 삶은 이런 이중 구조를 존중해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지혜로운 타협을 할 때 가능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