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대형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대형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국내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가 지난 17일 일본 공연제작사 도호에 수출됐다. 공연 개막 7일 만의 성과다. 이 뮤지컬은 내년 4월 일본 도쿄의 1300석 규모 닛세이극장에서 공연된다. 또 다른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과 ‘벤허’는 올 4월 중국 투자사로부터 각각 100만달러(약 11억3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중국으로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게 아닌, 중국에서 직접 투자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창작뮤지컬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 해외에 잇따라 수출(대부분 라이선스 판매)되거나 투자를 받으며 뮤지컬 한류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접’이 달라졌다. 과거 해외 유명 공연에 밀려 외면받곤 했지만 최근엔 ‘스모크’ 등 평균 예매율이 80~90%에 이르는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경쟁력 있는 공연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는 단계로 발돋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뮤지컬 생산기지로 성장”

뮤지컬이 국내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1년 국내 초연된 ‘오페라의 유령’이 발단이 됐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오페라의 유령’처럼 해외 공연팀이 직접 내한해 선보이는 ‘오리지널’ 또는 무대를 그대로 들여와 국내 제작진이 작업하는 ‘라이선스’ 공연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 제작진이 선보이는 창작뮤지컬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해외에서도 1997년 ‘명성황후’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것 외에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2007년 ‘사랑은 비를 타고’와 같은 작품이 일본에 판매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창작뮤지컬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30%를 차지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브로드웨이는 150여 년에 걸쳐 창작뮤지컬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왔는데 우린 10여 년이란 짧은 기간에 빠르게 성장했다”며 “해외 뮤지컬을 소비하는 시장에 그치지 않고 명실상부한 생산기지로 거듭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유명 공연 등을 통해 뮤지컬을 경험한 대중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외국 작품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한국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큐베이팅을 위한 지원 시스템도 힘을 발휘했다. 2010년부터 CJ문화재단이 ‘스테이지업’ 공모를 통해 뮤지컬 창작자를 선발, 지원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잘 제작된 창작뮤지컬로 꼽히는 ‘레드북’ ‘어쩌다 해피엔딩’ ‘팬레터’ 등은 모두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대형 제작사들도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고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 수준 높은 뮤지컬 제작에 팔을 걷어붙였다. ‘웃는 남자’ 역시 EMK뮤지컬컴퍼니가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175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쏟아 탄생했다.

◆수출국 다변화 기대↑

뮤지컬 한류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직접 투자를 유치할 뿐만 아니라 수출국도 다변화하는 조짐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드라마를 뮤지컬로 제작하고 아이돌 멤버를 등장시킨 ‘궁’ ‘미남이시네요’ 등이 일본에 수출되는 정도였다. 이후에도 뮤지컬 강국인 일본에 판매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뮤지컬 ‘팬레터’가 대만에 수출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의 확산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내 창작뮤지컬이 대만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지역이 넓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연간 2~3개였던 수출작이 지금은 20여 편으로 늘어났다.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발전을 위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4년 ‘프랑켄슈타인’의 총괄프로듀서를 맡았던 김희철 세종문화회관 문화예술본부장은 “뛰어난 창작뮤지컬도 초연 이후 사라지는 사례가 많다”며 “옥석을 잘 가려 스테디셀러가 될 만한 작품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교수도 “높은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채 무대에 먼저 올라가고 공연하면서 여러 번 수정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라며 “이런 방식보다 테스트마켓을 마련해 검증을 충분히 거치게 하고 완성도가 높은 상태에서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