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미다스의 손 (2)] 박혜진 "투고함 밑바닥까지 뒤진 치열함의 선물이죠"
'82년생 김지영' 85만부 기염
출간 2년째에도 소설 2위 랭크
꼼꼼한 투고관리 시스템의 승리
《82년생…》은 한국에 페미니즘 바람을 몰고 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지만 자칫 출간되지 못할 뻔했다. 조 작가는 이 작품을 민음사의 투고 메일함에 보냈다. 투고함에서 잠자던 이 작품을 발견해 책으로 만들어낸 건 이 책을 책임편집한 박혜진 민음사 차장(사진)이다.
1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차장은 “1차 투고담당자가 앞부분을 읽어봤는데 재미있다며 검토해보라고 넘겨준 원고였다”고 말했다. “쉽게 읽히는데도 공을 많이 들이고 공학적으로 잘 쓰인 소설이라고 판단해 당장 원고를 들고 작가를 만났습니다. 편집자로선 항상 장르를 파괴하는 작품을 작업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는데 르포와 소설의 경계점에 있는 이 작품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출판계에서 투고한 원고가 실제 출간까지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바쁜 편집자들이 긴 원고를 다 읽어볼 시간도 없고, 투고 원고는 대개 출간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다. 이 작품이 발견될 수 있었던 건 민음사의 철저한 투고 관리 방식 덕분이기도 하다. “한 달에 30편 넘는 소설이 투고돼요. 대부분 원고를 담당자들이 이중 검토하고, 출간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써서 팀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붙은 제목도 박 차장의 작품이다. 애초 조 작가가 가져온 제목은 ‘19820401 김지영’이었다. 그는 “세대론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82년생’이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생 여성들은 대학 졸업까진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믿었다가 사회에 진출한 뒤 여러 가지 성차별을 겪고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면서 좌절하는 독특한 경험을 지닌 세대예요. 이들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제목을 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돼버렸네요.”
그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8000부쯤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책은 그의 예상보다 100배가 더 팔렸다. “책을 읽은 독자들의 자발적인 홍보가 가장 큰 힘이었다고 봅니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게 하는 책’이라는 거예요. 조 작가는 성(性) 감수성과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인 거죠. 국회의원들의 추천이 책 판매 실적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추천 또한 책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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