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서울 대학로자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열전 제공
지난달 12일 서울 대학로자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열전 제공
해외 유명 소설 속 캐릭터를 다양하고 유쾌하게 변주한 연극들이 호평받고 있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룬 ‘R&J’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에선 많은 캐릭터가 성별과 상관없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등장한다. 잘 알려진 명작들을 낯설게 하는 동시에 색다르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캐릭터 저글링의 향연 ‘창문을~’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원작은 2009년 출간 이후 35개국에서 1000만 부 넘게 판매됐다. 연극열전은 이를 연극으로 만들어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대학로자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더 헬멧’ ‘카포네 트릴로지’ 등을 함께 만든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합작품이다.

극은 100번째 생일을 맞은 주인공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하는 2005년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동시에 1905년 태어나 100살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그린다. 알란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스페인, 소련, 미국, 이란, 북한 등을 오가며 20세기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김 연출은 극의 콘셉트를 ‘캐릭터 저글링’으로 잡았다. 서현철, 양소민, 김도빈 등 5명의 배우가 모두 주인공 ‘알란’이 된다. 100세 노인의 알란부터 젊은 시절의 알란을 각자 연기한다. 60여 명의 캐릭터도 5명이 전부 소화한다. 한 명이 11역 이상을 맡는다.

성별도 파괴하고 각 시대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고양이, 코끼리 등 동물도 이들이 연기한다. 김 연출은 “100년의 시간에 걸쳐 나타난 세계관의 변화 등 많은 이야기를 무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적용했다”며 “성 역할 전복도 성별과 상관없이 캐릭터의 생각과 이야기 자체에 집중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년의 시간을 140분에 녹이다 보니 극의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러나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생에 필요한 건 그저 몸 누일 침대, 음식과 술 한 잔, 이야기 나눌 친구뿐이야. 그동안 만난 진짜 바보들은 그걸 모르고 똑똑한 척하느라 인생을 망쳤지.” 공연은 9월2일까지.

◆여자 줄리엣 없는 ‘R&J’

지난 10일 서울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R&J’는 1997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된 작품을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미국 작가 조 칼라코가 집필했으며 시카고, 워싱턴DC 등 미국 전역에서 400회 이상 공연됐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고전의 캐릭터에 파격을 가한다. 여자 줄리엣을 없애고 남자 배우 윤소호, 강승호가 대신 줄리엣을 맡는다. 처음부터 4명의 남자 배우만 출연해 성별을 넘나들며 총 10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내용도 크게 변형됐다.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학교에서 남학생 4명이 늦은 밤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금단의 책 ‘로미오와 줄리엣’을 낭독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금지된 사랑, 폭력과 욕망에 신선한 자극을 받아 역할극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와 이야기에 매료되며 희곡 속 인물의 삶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역할극을 통해 처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로미오 역은 배우 문성일, 손승원이 펼친다. 뮤지컬 ‘킹키부츠’ ‘어쩌면 해피엔딩’ 등을 선보인 김동연 연출이 작품을 맡았다. 김 연출은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 언어로 가득 채우는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들로 무대를 매우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9월30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