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흐 귀 자르게 한 고갱… 두 사람은 악연?
1888년 12월23일 화가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냈다. 동료 화가 고갱과 함께 살며 공동 작업을 한 지 꼭 두 달째 되던 밤이었다. 둘은 격렬하게 다퉜고, 고갱이 자신을 떠날까 봐 늘 불안해하던 고흐는 정신분열 상태에서 귀를 자르고 말았다. 고갱은 이 일이 있은 뒤 도망치듯 고흐를 떠났다.

《고흐의 눈 고갱의 눈》은 세계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두 화가 고흐와 고갱의 가깝고도 먼 관계와 예술관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 큐레이터 박우찬이다.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대구시립미술관 건립전담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학예연구사 등으로 활동했다.

고흐와 고갱의 작품은 당시 기성 미술 화풍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선 비슷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전혀 달랐다. 가난한 아마추어 화가인 두 사람은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정반대였다. 고흐의 화가 공동체는 화가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해 팔고, 그 수익금을 공동생활과 작업에 다시 사용하는 것이었다. 반면 고갱은 후원자로부터 기금을 후원받아 화랑을 세운 뒤 화가들에게 작품을 기증받고, 기증한 작가는 무료로 화랑에서 전시 판매하는 상업적인 예술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의 공동 작업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지만 세계 미술사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고 강조한다. 고흐는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를 기다리며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들을 그려냈다. 고갱의 영향으로 기억과 상상력에 의존해 그리는 방법도 배웠다. 고갱은 애써 부인했지만, 감정을 담아 강렬하게 표현하는 법을 고흐로부터 배웠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