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가 오는 4일 개막하는 ‘조선시대 꽃그림-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에 출품한 일본 미술 애호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장품 ‘연화모란도’.  갤러리 현대 제공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가 오는 4일 개막하는 ‘조선시대 꽃그림-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에 출품한 일본 미술 애호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장품 ‘연화모란도’. 갤러리 현대 제공
조선시대 대표적 채색화 장르인 민화는 왕실의 화려한 병풍에서부터 허름한 여염집 벽장문까지 생활 공간을 두루 장식한 ‘생활부적’ 같은 그림이다. 꽃과 호랑이, 까치, 나비 등 서민의 일상 주변에 있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민화는 현실과 꿈의 세계를 간단없이 오갔다. 현실을 이겨내고 희망의 불씨를 살려 나가는 판타지 구조가 배어있다 보니 그림도 밝고 명랑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제미술계에서도 한국 전통 민화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까닭이다.

◆화조도, 모란도 등 명작 60여 점 소개

국내 최대 화랑인 갤러리 현대가 신관과 구관(현대화랑), 두가헌갤러리 등 세 개의 전시 공간을 통틀어 오는 4일 개막하는 ‘조선시대 꽃그림-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은 이런 추세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다음달 1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서는 조선시대 정조 때부터 유행해 2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화조도,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 연꽃, 모란도, 꽃자수 등 걸작 6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을 비롯해 가회민화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OCI미술관 등에서 빌려온 작품들로 대부분 처음 공개된다. 우리 민화를 세계에 알린 일본인 미술애호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소장한 ‘연화모란도’, 운보 김기창의 애장품, 1980년대 민화 우표로 만든 ‘화조도’와 ‘화접도’ 등 국보급 작품도 여럿 나온다.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소장품 도록에 폴 세잔 작품과 나란히 수록된 ‘책거리’(왼쪽).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소장품 도록에 폴 세잔 작품과 나란히 수록된 ‘책거리’(왼쪽).
민화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화조도에는 우리의 취향, 정서, 감성, 상징 등이 무르녹아있다”며 “조상들이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온 꽃의 이미지와 상징을 다채롭게 보여줌으로써 한국 근현대 회화의 뿌리를 관통하는 민화의 엄청난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밝힌다”고 설명했다.

세 개의 전시장은 화조의 성격에 따라 크게 사랑, 행복, 부귀영화 등 세 테마로 나눠 꾸며졌다. 신관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도와 화조도를 주로 걸었다. 강렬한 화려함을 자랑하는 꽃그림들은 방금 화실에서 꺼내온 듯 채색 또한 생생하다. 구관에는 꽃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새와 동물의 모습이 담겨 있는 화훼영모도, 연화도를 배치했다. 화훼영모도는 색깔이 화려하고 묘사도 직설적이어서 전통 채색화가 지닌 특징이 잘 녹아 있다. 두가헌갤러리에는 베개를 아름답게 장식한 베갯모 662점을 쌓고, 10억원대 활옷 등 자수 작품을 걸어 행복한 삶의 공간을 재현했다. 옛 선조들의 감수성을 담은 생활밀착형 예술이 싱그러운 미감을 뿜어낸다. 관람료 8000원.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도 올여름 민화전시회를 기획했다.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서 여는 ‘조선민화걸작전-내일을 그리다’이다. 한국의 대표적 민화 소장가인 김세종의 컬렉션들을 선보이는 자리여서 주목된다.

민화시장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지향하는 아트페어(장터)도 생겨났다. 지난달 14~17일 서울 대치동 SETEC에서 열린 민화아트페어에는 전통민화에 대한 가치와 이를 계승한 현대 민화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수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K아트의 새로운 브랜드로 주목

국내외 미술계는 민화가 신라금관, 고려청자, 불화, 단색화에 이어 세계에 보여줄 한국 미술문화의 뉴브랜드라는 점에 주목하고 전시회와 학술연구, 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고유 정서를 아우르는 역사적 맥락을 지녔기 때문이다.

2016년 예술의전당과 갤러리 현대가 공동기획한 ‘문자도·책거리’전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 찰스왕센터, 캔자스 스펜서미술관, 오하이오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을 순회하며 민화의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전시회를 전면에 소개하며 ‘미술한류’의 가능성을 예견했다. 작년 4월 미국 캔자스대에선 한국 미국 영국 등 3개국 학자 10여 명이 참석해 ‘화려한 채색화-조선시대 책거리 병풍’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2008년 ‘미와 학문’을 제목으로 특별전을 열어 관심을 모았다. 갤러리 현대는 올 10월 영국 런던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에서 책거리와 꽃그림을 아우르는 조선 민화를 세계적인 미술 애호가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해외 미술 애호가와 유명 미술관들도 민화를 소장품 목록에 속속 올려놓고 있다.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는 최근 발간한 ‘소장품 하이라이트’에 한국 전통민화 책거리를 폴 세잔의 작품과 나란히 실어 ‘조선의 정물화’라고 소개했다.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필라델피아박물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등도 한국 민화 병풍을 소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민화는 현대회화에 버금가는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화풍이 돋보이는 장르”라며 “K팝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K아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