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문·굶주림에 흔들렸던 백범, 위대한 투사도 보통사람이었다
김형오 지음 / 아르테 / 412쪽│1만9800원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쓴 백범 가상 인터뷰다. 선생의 호 ‘백범’은 평범한 백성, 즉 보통 사람이란 뜻이다. 책 제목의 ‘백범’은 선생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다. 저자는 백범일지를 완전히 해부하다시피 해 보통 사람들의 질문에 선생이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총 60개의 질문과 답, 여기에 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비범한 혁명가이자 진솔한 인간이었던 백범의 삶을 보여준다. 기자 출신답게 쉽고 간결한 문체로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황해도 시골의 상민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숟가락을 엿과 바꿔 먹은 개구쟁이 일화부터 동학의 ‘아기 접주’로 명성을 날렸으나 결국 실패했던 청년기의 좌절과 경험, 명성황후 시해를 복수하려고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뒤의 옥살이와 탈옥, 유랑, 농촌계몽운동, 임시정부를 이끌며 분투했던 중국 망명 시절의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책 전체에 담겨 있다.
![[책마을] 고문·굶주림에 흔들렸던 백범, 위대한 투사도 보통사람이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7119564.1.jpg)
이들을 먹여살리며 독립을 준비하는 일을 백범은 달팽이의 등껍질처럼 지고 살았다. 하지만 백범은 단 한 번도 이를 탓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월세도 못낼 만큼 가난에 쪼들렸지만 백범의 몸엔 60만원이라는 천문학적 현상금이 붙었다. 임시정부 청사 임대료 1600년치를 내고도 남는 돈이었다. ‘움직이는 복권’ 신세가 된 백범을 고발한 한인은 없었다. 저자는 “백범은 그들에게 현상금 60만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백범은 또한 결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나이, 지역, 출신 성분도 따지지 않았다. 1931년 1월 백범이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부장과 거류민단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찾아와 “젊은 날 일본으로 건너가 여기저기 떠돌다 독립운동에 뜻을 두게 됐는데 상해에 ‘가정부(假政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말의 절반은 일본어인 데다 행동거지도 일본인과 비슷했다. 가정부는 임시정부를 폄하해 부르던 말이었다. 다들 미심쩍어했지만 백범은 그와 우국담론을 나누며 의기투합했다. 그 청년이 바로 ‘철혈남아’ 이봉창 의사였다.
저자는 “열린 마음과 애국 열정, 삿됨이 없는 정의감이 백범과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한 길로 가게 했다”며 “엄혹한 임시정부 시절, 배신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상해에서 수많은 애국자와 투사는 그렇게 태어나고 길러졌다”고 평했다.
백범일지 마지막에서 밝힌 대로 백범의 평생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었다. 그래서 백범에겐 일제의 무조건 항복이 복음이 아니라 비보였다. 일지에서 백범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고 했다. 향후 전개될 통일정부 수립 과정에서 외세 영향력이 커지고 우리 정부의 발언권이 약해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주변 강국들의 영향력이 여전한 지금의 한반도를 보며 백범은 뭐라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렵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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