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대표 / 사진=조준원 기자 
이정민 대표 / 사진=조준원 기자 
옷장사의 시작의 참으로 미약했다. 서울 반포 지하상가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노점 장사, 성남‧인천 등지의 작은 지하상가를 거쳐 지금은 매출 1000억 원대의 온라인 쇼핑몰 CEO가 됐다.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추구하는 온라인 쇼핑몰 난닝구와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네프호텔을 운영하는 엔라인의 이정민 대표 이야기다. 12년 전만 해도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던 그가 10평도 안 되는 사무실에서 시작한 쇼핑몰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인턴’의 여주인공을 떠오르게 하는 이 대표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하게 됐나?
사실 12년 전 나는 컴퓨터도 다루지 못했다. 당시 대학생 조카가 대천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부모님을 도와 인터넷에 판매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가 옷 장사를 하고 있던 내게 같이 해보자고 권유했다. 마침 그때 운영하던 지하상가가 리모델링을 시작해 6개월 간 쉬어야 했다. ‘숙모가 잘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조카의 말에 집 앞에 월세 50만 원짜리 지하창고를 얻어 중고 카메라 한 대와 컴퓨터 두 대를 놓고 쇼핑몰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날 옷을 올려놓고 자고 일어나니 100만원어치가 팔려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처럼 하루 종일 손님들을 응대하지 않고, 더구나 자는 동안 옷이 팔렸다는 게 신기했다. 그날부터 지하상가로 돌아가지 않고 미친 듯이 쇼핑몰 운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옷에 감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고등학생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꾸미는 법을 몰랐다. 대학생 때 서울 반포 지하상가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옷을 잘 팔았다. 덕분에 근처 가게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졌다. 그중 건너편 가게가 자리는 좋았는데 장사가 안 됐다. 패션 감각 없는 남자 둘이 운영하던 가게라 옷이 영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동대문시장에 나가 옷을 골라주고 직접 진열해주니까 다음날부터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잘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 일에 빠져들었다. 그 때 그 가게의 두 남자 중 한 명이 지금의 남편이다. 하하.

난닝구는 10년도 안 돼서 온라인 쇼핑몰 1위에 등극하며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2006년 당시 차별화된 콘셉트가 좋았다. 그때는 온라인 쇼핑몰의 스타일이 다 비슷했다. 그런데 우리는 모델이 부끄러움이 많아 자연스럽게 걸으라고 주문하고 할리우드의 파파라치처럼 사진을 찍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요즘으로 치면 인스타그램 스타일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모델도 인기를 끌었다. 시대를 잘 탄 것 같다.

그 모델 직원과 아직까지 함께 일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와 11살 차이 나는 직원이지만 가장 친한 사이다. 그가 19살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함께한 지 15년이 됐다. 인기가 굉장히 많아져서 다른 쇼핑몰로부터 이직 제의도 많았는데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최근에는 둘이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나이 차이가 나지만 마음이 잘 맞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복이 많았다. 대다수의 직원들도 창립부터 함께해 10년 이상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인이다.

난닝구가 잘되고 있는데도 새로운 사업을 확장한 계기는?
2011년 난닝구를 운영하면서 촬영 장소의 한계를 느껴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당시 나는 프랑스와 벨기에 여행을 다니며 빈티지의 매력에 빠져 가구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있던 가구들을 활용해 스튜디오 겸 부티크호텔인 ‘빠세호텔’을 지었다. 그런데 이제는 빠세 호텔에 있던 커튼, 가구, 배게, 침대 등 소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졌다. 마침 난닝구의 오프라인 매장을 세울 계획이었던 터라 ‘패션과 빈티지 소품을 접목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네프호텔’을 만들게 됐다. 결과적으로 난닝구가 큰 성공을 거두니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가로수길에 위치한 ‘네프호텔’ / 사진=조준원 기자
가로수길에 위치한 ‘네프호텔’ / 사진=조준원 기자
가장 자랑하고 싶은 성과는?
많은 기업들이 우리 회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상장을 추진한 것?(웃음) 나도 깜짝 놀랐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 않나. 그런데 여기저기서 우리와 같이 하자는 제안이 쏟아지니 ‘내가 잘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올 가을에는 새 사옥으로 이전한다. 회사의 물류가 워낙 많다보니 2000평 가까운 부지가 필요해 그동안 구하기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최근 매물을 구했다. 무엇보다도 이전보다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직원들에게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어 기쁘다.

여러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흔들림 없는 중요한 가치관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내 나름의 원칙이다. 난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또 250여명의 대표이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할 때 우리 기업이 성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꼼꼼히 분석한다. 그 외 어려운 건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 헤쳐 나갈 수 있다. 결국 내가 그 일이 재밌고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 있어야 한다.

또 도전할 새로운 사업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시작할 것이다. 지금껏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만 해서 망설임이 없었다. 원하는 아이템을 선정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로 시장 내 고객과 팬을 확보하는 작업에 나름 익숙하고 자신이 있다. 최근에는 화장품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여러 제품도 써보고 관련 회사들과 만나다보니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다. 이르면 이번 하반기에 여성들을 위한 뷰티 아이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 제품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앞으로의 목표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지만 ‘글로벌 브랜드’다. 얼마 전 직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난닝구가 중국의 VIP닷컴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지난 3월 한 달 동안 약 1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깜짝 놀랐다. 중국 시장의 거대함을 몸소 느꼈다. 그래서 엔라인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브랜드로 고객들과 소통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것을 꿈꾸게 됐다.
[뷰티텐] “지하상가 직원에서 1000억대 매출 CEO로”··· 엔라인 이정민 대표의 영화 같은 이야기
태유나 한경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