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박석원 씨가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조각가 박석원 씨가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원로 조각가 박석원 씨(77)는 6·25전쟁, 4·19혁명 등 한국사 격동기를 지나며 한국적 추상조각의 정체성과 새 지평을 열어젖히려 무던히 노력했다. 1965년 김구림 최명영 이승조 등과 미술단체 ‘아방가르드(AG)’을 결성한 그는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기성 화단에서 추상 조각장르에 불을 붙였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나무, 자연석 등을 사용한 조각 작업을 통해 전통적인 조각 방법론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을 했다. 1968년과 1969년 국전에서 잇달아 대상(국회의장상)을 받은 그는 한국 앵포르멜 조각의 대표작가로 평가받았다.

AG그룹의 창립 멤버로 한국 추상조각을 이끌어온 박씨가 2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시작한다. 돌과 나무, 브론즈 등을 재료로 평생 추상조각에 매달려온 작가가 최근작과 드로잉 등 30여 점을 선보이는 희수(喜壽)전 성격의 개인전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초창기를 주도한 박씨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앞서갔던 작가정신을 탐색할 기회다.

17일 전시장에 만난 박씨는 “조각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미학”이라고 말했다. 자름과 쌓음의 끝없는 반복, 증식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되묻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재료를 하나하나 쌓아(積) 인간의 마음(意)을 형상화하는 적의(積意)가 담겨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처럼 율동감이 숨쉬고 재질도 단순하다. 단단한 나무와 금속 덩어리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마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처럼 풀어놓는다. 형태는 매우 단순하지만 기하학적인 논리와 표면의 색채, 공간의 조합이 묘한 아우라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복잡한 조각보다 숭고한 느낌을 준다.

초창기 둥그런 모형을 주로 다뤄온 박씨의 작품세계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작가는 1970년대까지 ‘자름’(切)의 미학을 추구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석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절단을 위한 기하학적 매스에 탐닉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쌓음’(積)의 단계로 이행했다. 화강석과 마천석, 나무 같은 자연 물질에 사람들의 손이나 아이디어를 거쳐 재탄생한 구리, 철판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전체를 구성한 게 특징이다.

조각 세계에 자신의 평생 삶을 묻어왔다는 박씨는 “내 이름(石元)처럼 돌과 철을 조각하는 직업은 외롭고 고달프지만 숙명이고 나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7월1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