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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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경제(positive economy)’라는 개념을 주창한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자크 아탈리가 신간을 내놨다. 미래 세대 이익까지 고려한 공익적 경제에 대해 쓴 《자크 아탈리의 긍정경제학》,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에 이어 이번 책 《자크 아탈리의 미래 대예측》에는 우리의 대응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유럽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와 수재들이 간다는 그랑제콜을 세 곳이나 거치며 토목공학 정치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경제고문을 지냈고 유럽부흥개발은행 초대 총재도 지냈다.

[책마을] 세계경제는 폭풍 속 비행기… 제도 개혁이란 '조종실' 필요
저자는 인류 역사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움직임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행복과 자유를 얻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편에서는 구속과 파괴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생활 수준 향상과 기대수명 증가, 노동 강도 완화와 기업 내 조직문화의 변화, 농업 및 의료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 등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반면 빠른 고령화와 환경 오염, 경제 성장률 하락과 부의 쏠림, 중산층 감소와 보호무역주의 심화 등은 지금까지의 발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 요소로 꼽았다. 저자는 밝은 측면을 29쪽에 걸쳐 그렸다. 어두운 면을 기술하는 데는 48쪽으로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세계가 이미 분노의 경제, 폭력적 사회에 들어섰다”는 저자의 진단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극소수만 누리고 있는 부를 가지지 못해 절망에 빠지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경제 분야에서 저자의 경고는 구체적이다. 중국의 부채 거품과 미국 그림자 금융업체들의 불안, 유럽 은행 시스템 붕괴나 유로존 탈퇴로 인한 유럽 위기, 정부의 공공부채 증가가 불러올 금리 폭등과 물가 상승 등을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씨로 꼽았다.

그렇다고 비관으로만 치우쳐 있지는 않다. 끝이 보이는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진단을 내린 후에는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제도 개혁을 ‘폭풍우 속을 지나는 비행기 안에 조종실을 만드는 것’에 비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객들에게 조종실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전 세계 차원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기존 통화를 보완하기 위해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국제 가상화폐를 만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밖에 △주요 20개국(G20)이 지닌 권한들을 개혁된 안전보장이사회에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상임사무국을 마련해 현존하는 국제금융기관들을 관리하는 방안 △국제적인 ‘긍정적 경제 기금’을 신설하자는 제안도 포함됐다. 전염병을 막을 예방책을 마련하고 바이오 농업, 재활용 기술, 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 기금을 쓰자는 것이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제안도 눈길을 끈다. 한국이 마주한 현실과도 접목되는 부분이어서다. 저자는 다음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공공부채를 대폭 줄이고 은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두 번째 인생의 시작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지식 철학 윤리에 대해서는 평생에 걸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 제도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내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조망하면서도 틈틈이 이타주의와 공감, 예의를 기반으로 한 개인의 변화를 촉구한다. “자신의 삶을 가능한 고결하게 살아낼 때 비로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이다. 책의 각 장이 현실 진단과 문제의 원인 분석, 그에 대한 해결책 제시로 명확히 나뉘어 있고 심각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 저자의 명성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 비해 200쪽 남짓으로 얇은 책 두께도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