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연극 ‘리처드 3세’.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연극 ‘리처드 3세’.
“리처드는 리처드를 사랑해. 그래, 나는 나야. 여기 살인자라도 있나? 아니, 내가 바로 살인자야.”

왕이 되기 위해 적도, 가족도, 협력자도 무자비하게 처치하는 리처드 3세. 셰익스피어 초기 비극 주인공인 그는 어둡고 자기 파괴적인 영혼을 가진 캐릭터다. 이런 절대악의 화신이자 천재적인 모사꾼은 연출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그려내고 싶어 하는 캐릭터로 꼽힌다. 배우들도 등을 굽히고 발을 절며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이 역을 맡고 싶어 한다.

올해 국내 연극계에서도 리처드 3세가 큰 화제다. 지난 2월엔 배우 황정민의 ‘리처드 3세’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됐다. 이달엔 해외 유명 연출가들이 재해석한 ‘리처드 3세’ 무대가 잇따라 펼쳐진다. 유럽 연극계 거장으로 꼽히는 토마스 오스터마이어(50), 장 르베르 빌드(46) 감독의 작품이다.

◆오스터마이어, “엔터테이너로 재해석”

독일 연출가 오스터마이어는 14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리처드 3세를 선보였다. 2015년 ‘민중의 적’을 연출한 이후 3년 만의 내한 공연이다. 31세에 독일 샤우뷔네베를린의 예술감독 자리에 오른 오스터마이어는 20년 가까이 이 극장을 이끌고 있다. 파격적인 연출로 이곳을 실험 연극의 산실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베를린 초연에 이어 이번 무대에서도 그는 리처드 3세를 이색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오스터마이어는 이날 LG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리처드 3세를 무조건 악인으로 치부하기보다 관객을 유혹하는 엔터테이너이자 우리 내면의 새로운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 또한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관객의 심리 변화를 즉각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샤우뷔네극장에선 반원형 무대를 따로 만들었다. LG아트센터에선 반원형 무대는 아니지만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가깝게 했다. 그는 “다른 나라 관객에게도 최대한 동일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앙상블과 라이브로 연주되는 드럼의 강한 비트도 펼쳐진다. 리처드 역은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가 맡았다. 오는 17일까지.

◆2인 광대극으로 만든 빌드의 무대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리는 국립극단의 ‘리처드 3세’는 프랑스의 빌드 연출이 펼쳐 보인다. 2016년 ‘로베르토 쥬코’를 선보인 이후 2년 만이다.

빌드 감독은 전통적 연극기법에 독특한 시도를 접목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도 ‘리처드 3세’를 광대극으로 만든다. 극은 리처드 3세가 자신의 환영과 마주하고 망령들이 나타나며 새로운 환상세계가 펼쳐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작엔 40명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선 빌드 자신이 리처드 3세가 돼 프랑스 배우 로르 울프와 두 명이서만 호흡을 맞춘다. 울프는 리처드 3세와 엮이는 여인들, 버킹엄을 비롯한 그의 수족들을 연기한다. 이 작품에서 리처드 3세는 몸이 불편한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파자마와 도자기 갑옷을 입고 행동한다.

이런 색다른 시도로 2016년 프랑스 초연 후 프랑스 전역과 일본 투어 공연을 하며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국립극단 측은 “곳곳에서 광대극 특유의 유머가 튀어나온다”며 “사랑스런 얼굴로 무대에 오른 어릿광대의 모습을 통해 거꾸로 리처드 3세의 잔혹함과 양면성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