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객석과 무대 한뜻으로 모은 한경필의 앙코르곡 '애국가'
“30~40년 전엔 이곳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영화 상영관에서도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애국심을 고취시킬 곡을 연주하거나 들을 기회가 많이 줄었습니다. 핀란드만 해도 100여 년 전 작곡된 ‘핀란디아’란 곡을 지금도 연주하는데 말이죠.”

금난새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 65주년 호국보훈음악회’ 연주를 마친 뒤 이같이 말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에 앙코르곡을 설명하는 듯했던 그의 입에선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애국심을 느낄 만한 노래는 이 곡 만한 게 없죠”라며 마지막 곡을 지휘했다. 너무나 익숙한, 그렇지만 음악회에서 자주 들어보지 못한 곡, ‘애국가’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관객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행사장에서 들어온 녹음 반주가 아니라 한경필하모닉의 생동하는 연주에 일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난해 2회 때 호국보훈음악회에서는 정예경 작사·작곡의 ‘대한민국 만세’라는 곡이 초연됐다. 올해는 그런 의미를 담은 곡이 없었다.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 보로딘 오페라 ‘이고르공’의 ‘폴로베치안 댄스’ 정도가 이날 음악회의 주제와 상응하는 곡이었다.

우리에게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곡들은 있다.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이 그렇다. 펜데레츠키 교향곡 5번 ‘한국’ 같은 곡도 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이런 곡들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 이유를 ‘곡의 완성도’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환상곡의 경우 관현악 편성 자체가 세련되지 않아 해외에서조차 잘 연주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2년 정부가 광복절을 기념해 작곡 의뢰했던 펜데레츠키 교향곡 5번에 대해서도 “부제와 달리 한민족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 아니며 한국의 고전 음계인 5음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며 “한국에서 초연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에서도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곡은 없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세련된 클래식 작법이 50년 이상 끊겼다는 게 평단의 공통된 설명이다. 윤이상 정도가 외국 작법으로 곡을 내놨을 뿐 우리 음악계에선 ‘애국 곡’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애국가’ 외에 애국심을 고취시킬 만한 곡 하나 없는 게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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