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에서 블랙 유머를 가장 잘 구사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이기호 씨가 5년 만에 웃음기를 걷어낸 채 돌아왔다. 신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문학동네)를 통해서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한정희와 나’ 등 소설 7편을 함께 묶은 단편소설집이다.

불편하고 부끄럽고… 웃음기 걷어낸 삶의 편린
저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 세상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가 왜 어려운지를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첫 작품 ‘최미진은 어디로’에서 등장하는 ‘이기호’는 인터넷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자신의 소설이 헐값에 나온 것을 발견한다. 코멘트는 가관이다.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다섯 권 구매 시 무료로 드림.’

모욕감에 잠을 설친 그는 책을 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KTX를 타고 경기 일산까지 달려간다. 책을 팔러 나온 사람은 이기호가 직접 책을 사러 나온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고, 사실은 그의 책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책에 악감정을 담아 소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라고 중얼거리는 전화기 너머 청년의 술주정을 들으며 ‘이기호’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이내 서글프고, 부끄러워진다.

이 책 안에는 이런 불편한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한정희와 나’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다크 데리다의 ‘절대적인 환대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소설 속으로 가져오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나’가 아내를 맡아 키워줬던 이들의 손녀 ‘한정희’를 아무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맡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정희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면서 ‘나’는 이내 정희를 향한 마음을 닫는다. ‘나’가 보인 환대에는 ‘폭력’이나 ‘뻔뻔함’ 같은 예상치 못한 요인들은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이야기하는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은 인간 사이에서 가능한 감정인 것일까. 소설 끝머리에서 저자는 독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