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곳곳에 운하가 보여서 ‘북구의 베네치아’ 라 불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곳곳에 운하가 보여서 ‘북구의 베네치아’ 라 불린다.
드디어 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미·북 정상회담에 지방선거까지 겹쳐서 관심이 덜한 편이다.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는 뜨거운 드라마다. 월드컵이 열리는 러시아 또한 드라마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만 해도 ‘레닌그라드’라고 불렸던 북구의 아름다운 도시다. 모스크바에서 ‘붉은 화살’이라는 야간열차를 타고 열 시간 정도 대평원을 달리다 보면 다음날 이른 아침 당도하게 되는 이곳은 북위 60도라는 북극권 가까이 접해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겨울철에는 상당한 추위와 긴 밤이 계속돼 대단히 음산한 느낌을 준다지만, 여름철에는 그와 반대로 하루가 거의 낮만 계속돼 밤이 없는 듯한 ‘백야현상’으로 온 시가에 활기가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거리를 관통하는 운하, 그림 같은 풍경

[여행의 향기] 월드컵 열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북구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핀란드만으로 흘러나가는 네바강의 델타 지대에 형성된 자연의 섬과 시내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운하에 의해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잘 정돈된 도시로 혹자들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까지 평하곤 한다. 산뜻한 공원과 광장, 그리고 중세 시절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여러 궁전을 비롯한 수많은 바로크식 건물들이 모든 이에게 평화를 줄 것만 같은 독특한 매력과 분위기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정러시아 시절에 200여 년 동안 수도의 자리를 지켰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직은 우리에게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곳의 중심가인 네프스키 대로를 제일 먼저 걸어본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세계에서 가장 서정적인 거리’라고 읊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도 등장할 만치 잘 알려진 이 거리의 이름은 1240년 스웨덴과의 네바강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페테르부르크의 낭만이 서려 있는 곳이다.
네프스키 가도 공터에서 연주 중인 학생들
네프스키 가도 공터에서 연주 중인 학생들
이른 아침이라 버스와 트롤리버스 그리고 행인들의 모습은 한산하지만 가지각색의 바로크식 건물들이 돋보인다. 모스크바의 거리가 주는 인상이 좀 메마르고 딱딱한 편이라고 한다면 이곳은 보다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몇 개의 운하가 이 거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의 그림 같은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 거리의 곳곳에서 금방이라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네프스키 가도를 따라 네바강 쪽을 향해 걷다 보면 정면에 황금빛 첨탑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 해군성 건물로 그 앞에는 커다란 광장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바로 ‘데카브리스트 광장’이다. ‘12월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 광장은 1825년 12월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한 젊은 귀족들이 이곳에서 혁명을 시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혁명은 실패해서 모두들 처형당하거나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으로 유배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여러 도로망이 방사선 모양으로 뻗어 있는데, 이 광장의 남쪽에 매우 높게 솟아 있는 커다란 황금빛 돔이 빛나는 건물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로마의 베드로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는 ‘성 이사크 성당’이다. 높이 101.5m로 30층 빌딩과 같은 높이이기 때문에 먼 곳에서도 그 빛나는 모습을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이 건물은, 1818년부터 짓기 시작해 40년 동안 5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동원됐다고 한다.

시인 푸시킨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 표현

원래 이 지역은 늪지대였기 때문에 이만한 건물을 올리는 데는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세로 6m짜리 말뚝 1만3000개를 박은 뒤 그 위에 화강암이나 석회암을 깔고 구조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특히 어려웠던 점은 지금의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는 높이 43m나 되는 24개의 돌기둥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그 기둥들은 각각 무게가 67t이나 되는 거대한 것들인데 당시의 기술로는 무척 어려운 공사였음에 틀림없다. 그 돌기둥 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져 보이는 페테르부르크 시가지와 네바강의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정러시아 시절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을 바라보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을 바라보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
북구 습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던 이곳이 역사상에 이름을 나타낸 것은 지금부터 290여 년 전의 일이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북방정책의 하나로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를 건설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네바강의 토끼섬이라 불리는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가 바로 그곳인데 이 요새와 함께 도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모습을 당당히 지키면서 지난날의 역사를 대변하듯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고 있는 성벽이나 대포들이 푸른 하늘 밑에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서구화를 촉진시켰으며, 이곳은 그로부터 약 2세기에 걸쳐 정치·경제·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게 됐다. 시인 푸시킨이 이곳을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표현했듯이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인 도시다. 그러나 이곳이 나중에 러시아 제정을 붕괴시킨 동란의 진원지가 되었고 결국에는 혁명을 일으킨 땅이 되고 말았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
예르미타시 박물관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년
독일군에 포위돼 굶주림과 싸워 이긴 도시

1905년 ‘피의 일요일’에 식량과 자유를 원하는 민중은 네프스키 대로를 행진했고, 궁전 광장에서 혁명을 꾀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희생만 안겨줬을 뿐이다. 그렇지만 결국 1917년 2월 혁명,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정 붕괴를 실현시킨 10월 혁명에 의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소비에트 정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 볼셰비키 혁명의 첫 포성을 울린 순양함 ‘오로라호’가 네바강의 한편에서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모든 혁명은 이곳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흔히들 이곳을 혁명으로 시작해서 혁명으로 끝나는 ‘개혁의 도시’라고 말하곤 한다.

이처럼 혁명과 봉기로 러시아 제국 수도로서의 영광과 고통을 한몸에 안고 있는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큰 시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가을을 시작으로 900일 동안 독일군에 의해 포위돼 포격과 공습, 그리고 무서움 속에서 굶주림과 싸워 이긴 사건이다. 죽음에 휩싸였던 이때의 악몽을 ‘레닌그라드의 900일’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굶어죽은 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때의 처절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민들은 그날의 아픔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영웅전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승리의 광장’을 만들고 거기에 탑과 조형물을 세웠다. 탑에는 오로지 ‘1941~1945’란 숫자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아무 말도 필요 없다는 듯이.

네바강에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들을 바라보며 잘 정돈된 공원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갑자기 구멍이 횅하게 뚫린 듯한 느낌을 주는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아름답고 거대한 건물들로 삥 둘러있는 이 광장이 바로 그 유명한 ‘궁전 광장’이다.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면에 간직한 채 모든 것이 조화로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이 광장의 일대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심장인 셈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1812년 조국전쟁 때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알렉산드르 원기둥’이 있다. 높이 47.5m, 직경 4m, 무게 600t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단일 돌기둥이 자체의 무게만으로 육중하게 버티고 서 있다.
알렉산드르 원기둥 아래 서 있는 마차
알렉산드르 원기둥 아래 서 있는 마차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겨울궁전

광장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담녹색 벽에 하얀 기둥과 금빛 조소들이 광채를 더하고 있는 ‘겨울궁전’이, 반대편에는 말발굽처럼 반원형의 3층짜리 노란색 건물인 옛날 해군 참모본부가 제정러시아 시절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러시아 최초의 해군이 이곳에서 조직됐고,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승리의 여신’이 조각돼 있는 ‘개선아치’가 돋보인다.

겨울궁전은 이제 ‘예르미타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시 러시아에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작품이 망라돼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륙국가들의 유물들이 소장돼 있는데, 그 엄청난 소장품은 말할 것도 없고, 박물관 그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이어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예르미타시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쿠데타로 남편을 왕위에서 퇴위시키고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 여왕이 외국 그림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때 사 모았던 그림들이 이 예르미타시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이 박물관을 대충 둘러만 보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안내인 없이 혼자서 자유롭게 둘러보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괜히 쑥스러워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볼거리는 이밖에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두가 역사의 때가 묻어 있고, 절대권력의 힘을 느낄 수 있고, 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볼거리인 셈이다. 통념상 깊은 밤을 가리키는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태양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북구의 백야가 바로 이렇다. 네바강변의 벤치에 앉아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