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학회·한길사, 내년 가을까지 16권 완간 계획
"용어 통일하고 가독성 높여…칸트 연구 토착화 계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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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서양철학사에서 분수령이 된 인물이다.

칸트 이전 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오고, 칸트 이후 철학은 칸트에서 나온다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그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칸트가 집필한 책으로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 유명하나, 그는 이외에도 다양한 저서와 논문, 편지를 썼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3대 비판서 위주로 번역돼 칸트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칸트학회가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한길사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칸트전집 출간에 나섰다.

학회에 속한 철학자 34명이 독일 학술원이 발간한 '칸트전집' 대부분을 번역해 내년 가을까지 모두 16권을 펴낸다는 것. 석정(石亭) 이정직이 1905년 '강씨(칸트)철학설대약'을 내놓은 지 110여 년 만의 성과다.

2013년 시작해 종착점을 향해 가는 이 사업의 첫 번째 결과물로 제2권 '비판기 이전 저작Ⅱ(1755∼1763)', 제5권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제7권 '도덕형이상학'이 최근 출간됐다.

이를 기념해 4일 서울 중구 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칸트학회장인 이충진 한성대 교수는 "매우 신중했던 칸트는 철학 사상을 전개할 때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고, 이로 인해 문명사적으로 큰 열매를 맺었다"며 "칸트전집 출간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에 나오는 번역서가 기존에 일부 번역됐던 책들에 비해 수준이 높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학회가 공인한 번역서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출간될 책은 예외 없이 칸트전집을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칸트학회는 칸트가 생전에 출간한 저서 중 '자연지리학'을 제외한 책은 거의 모두 우리말로 옮기기로 했다.

그중 '비판기 이전 저작Ⅰ·Ⅱ·Ⅲ',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논리학', '서한집', '윤리학 강의'는 국내 초역이다.
철학자 34명이 집단지성으로 번역한 칸트전집 첫 출간
학회는 번역 작업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기존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은 물론 기존에 역자마다 다르게 쓴 용어를 통일하고,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독일어와 라틴어 병기는 지양하고, 역주는 뒤에 한꺼번에 배치했다.

최소인 영남대 교수는 "많은 사람이 번역하고, 번역문을 돌려보면서 책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며 "번역, 역주, 해제에 대해 교차 심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인문학은 본래 개인 중심으로 연구하지만, 칸트전집을 출간하면서 집단지성을 활용했다"며 "학문 토착화는 번역서 출간이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번 작업은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학회가 통일성 유지를 위해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용어다.

용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반드시 동일하게 써야 하는 '필수 용어'와 역자에 따라 유동성을 둔 '제안 용어'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트란스첸덴탈(Transzendental)과 아프리오리(a priori)를 번역할 때 각각 '선험적'과 '아프리오리'를 쓰기로 했다.

트란스첸덴탈은 기존에 '선험(론)적'이나 '초월(론)적'으로 옮겨졌고, 아프리오리는 '선천적'이나 '선험적'으로 번역됐다.

김재호 서울대 교수는 아프리오리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프리오리는 경험에 앞설 뿐 아니라 경험과 무관하다"며 "선천적이나 선험적이라는 말로 옮기면 칸트의 생각을 곡해할 수 있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최소인 교수는 "칸트학회가 칸트 용어를 통일하면 헤겔, 하이데거, 후설 연구자들도 동일한 용어를 쓰게 될 것"이라며 "학계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도 칸트전집 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영미권, 일본과 비교하면 칸트전집 출간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도서관에 놓인 칸트전집이 한 사람에게라도 자극을 준다면 철학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