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윈하이야오의 부드러운 채소 요리.
① 윈하이야오의 부드러운 채소 요리.
외국인이 단기간에 중국음식 기행을 하고 싶다면 베이징이 답이다. 베이징은 권력과 외교의 무대이고, 수도로서 역사와 문화가 풍성하다는 인상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반대로 음식기행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집약적으로 음식기행을 하기를 원한다면 베이징이 가장 좋다. 음식 환경으로서는 척박하지만 수도의 권력이 전국 각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1267년 대도(大都)라는 신도시를 건설해 수도로 삼은 이후 지금까지 750년 이상 동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였다. 명대 초기와 중화민국 시대가 잠시 예외였을 뿐, 원대 이전에 요와 금이 수도에 버금가는 배도(陪都)로 삼았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베이징은 ‘대륙 천년의 수도’다.
③ 단맛이 감도는 팡산팡촹의 새우 요리.
③ 단맛이 감도는 팡산팡촹의 새우 요리.
수도란 권력의 중심이라 각 지방의 인재와 물산은 물론 음식까지도 몰려들어왔다. 왕의 주방과 각 지방의 ‘재경’ 회관들이 핵심적인 음식문화 전파의 중계소였다. 왕의 주방은 전국 특산 식재료와 다양한 조리법이 몰려드는 고급 음식의 집결지였다. 왕의 음식은 궁중연회를 통해 민간으로 퍼져나갔다. 회관은 지방정부가 수도에 두던 일종의 대표부 겸 동향조직이었다. 회관에서 나누던 고향 음식은 서서히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수도는 외교에서도 중심 무대다. 먼 나라의 낯선 음식이 곧장 베이징으로 들어오기도 했고, 중국음식이 외국인과 만나면서 국제화하기도 했다.
② 찰밥으로 채운 단호박찜.
② 찰밥으로 채운 단호박찜.
바이두 가오더 등에 수많은 식당 검색

베이징 음식기행은 어디서 시작할까. 중국어에 서툰 한국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준비만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두 배 세 배 즐거운 탐구여행이 될 수 있다.
④ 원난차이의 돼지족발.
④ 원난차이의 돼지족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스마트폰에 설치한 중국 지도다. 중국에서는 구글 지도가 차단되기 때문에 바이두, 가오더와 같은 중국의 지도를 사용해야 한다. GPS를 켜면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고, 주변 검색에서 미식 또는 식당 등을 터치하면 주변 식당 검색 결과가 나온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음식 분류를 열면 다양한 식당이 나타난다.

중국음식, 서양음식, 패스트푸드, 맥주바, 고기구이 또는 꼬치구이, 카페, 한국음식, 중국차, 뷔페, 일본요리, 동남아 음식 등이 나온다. 식당 분류가 곧 음식의 종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가운데 중국음식을 다시 열면 샤부샤부, 쓰촨요리, 광둥요리, 간단한 식사 또는 간식, 후난요리, 장쑤와 저장 요리, 동북요리, 해산물, 이슬람 식당, 상하이 요리, 산둥요리, 베이징 토속 음식, 후베이 요리 등이다. 이런 분류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식당별 상세정보가 보기 쉽게 나열된다. 식당의 이름 주소 영업시간 휴업여부 평점(별표) 객단가 등이 표시되고 음식 사진도 풍부하다. 내 위치와의 거리도 표시된다. 특정 식당을 터치하면 바로 내비게이션으로 연결할 수 있다.

후퉁, 누적된 시간의 지층을 느낄 수 있는 곳

여행 출발지로 돌아와서, 베이징은 한국인에게 어떤 여행지일까. 자금성 천단공원 만리장성 톈안먼 등 중국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커다란 건축물들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첫 번째 베이징 여행이라면 이런 곳들이 적당하다. 싼리툰이나 궈마오, 중관춘 등 현대 중국을 보여주는 거리도 추천할 만하다.

베이징 사람들의 소박한 골목길 후퉁도 의미가 있다. 누적된 시간의 지층을 느낄 수 있는 후퉁을 찾아보자. 1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후퉁은 크게 달라졌다. 외국 여행객이 후퉁을 찾기 시작했을 때 좁지만 정정방방하게 이어진 후퉁에는 백성들의 소박하고 고단한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낡은 회색의 벽돌 담, 담장 넘어 골목까지 그늘을 드리우는 오래 된 나무들, 여름에는 늘어진 러닝셔츠를 걸치거나 그것조차도 걸치지 않은 중노년 남성들이 평상에 걸터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풍경. 물론 위생적이지 못한 공중 화장실은 꽤나 거북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일률적으로 깔끔하게 도색한 담장, 보도블록을 새로 깔아 트렁크도 잘 구르는 골목길, 말끔해진 사합원의 작은 대문들. 예나 지금이나 여행객이 모여드는 난뤄구샹도 그렇다. 초기에는 작은 카페나 수공예 기념품점, 특색 있는 작은 식당에 노점상들이 어우러진 골목이었다. 이제는 중국의 거대 자본들이 밀고 들어왔다.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기념품과 액세서리, 의류와 화장품 매장들이 들어찼다. 테이크아웃 음료매장도 많아졌다. 매장의 크기도 예전에 비해 서너 배 정도는 커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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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가 느껴지는 후퉁의 골목들

후퉁을 걸으면서 라오베이징을 느껴보는 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그때와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한국인이라면 후퉁에 서려 있는 대한민국의 지난 세기 현대사를 음미하면서, 몇몇 특색 있는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현대 중국의 급속한 변화를 상징하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금상첨화다.

베이징 후퉁은 난뤄구샹이 가장 유명하다. 난뤄구샹은 지하철 6, 8호선 난뤄구샹역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770m의 골목이다. 이 길에는 동서로 1.1㎞의 후퉁 9개가 직각으로 교차한다. 이 구역도 난뤄구샹이라고 통칭한다. 난뤄구샹의 서쪽 경계선은 베이징 도심의 정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중축선이다. 이 중축선을 따라 남쪽으로 500m를 가면 경산공원이다. 경산공원 남쪽은 자금성 북문, 자금성 남쪽은 중산공원, 중산공원의 남쪽 중앙이 톈안먼이다. 톈안먼 남쪽에는 톈안먼광장과 지하철 첸먼역이다. 난뤄구샹에서 첸먼역까지는 직선으로 3.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우리 현대사를 더듬어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유공자 1호로 서훈한 이회영의 거주지도 있고, 신채호가 살던 골목도 있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머물던 골목도 이곳에 있다. 이육사가 순국한 지하 감옥이 있던 건물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저장성, 이슬람요리 등 다양한 음식점 즐비

설탕, 벌꿀에 절인 대추를 얹은 베이징의 샤오츠.
설탕, 벌꿀에 절인 대추를 얹은 베이징의 샤오츠.
이 지역에서는 베이징의 샤오츠를 길거리에서 끝없이 만난다. 눈에 뜨이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맛보면 된다. 음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다양해졌다.

사전에 알고 찾아가야 하는 고급 식당으로는 다음 몇 개를 추천할 만하다. 이 식당들은 2011년 내가 중국 음식기행을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펴낼 때도 좋은 식당이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식당들이다. 음식문화는 그대로라고 해도 식당은 이윤을 내는 사업체이기 때문에 부침이 심하다. 좋은 식당도 5년이면 손바뀜이 적지 않은데 이들 식당은 오히려 발전하고 있는 훌륭한 식당들이다. 허우하이 북쪽 끝 호숫가에 있는 쿵이지는 저장성 요리점이다.

스차하이 호숫가의 유명 식당 ‘카오러우지’
스차하이 호숫가의 유명 식당 ‘카오러우지’
스차하이 허우하이 사이의 다리 건너편에 있는 윈하이야오는 윈난성 요리를, 상동에 있는 카오러우지는 이슬람 요리를 잘한다. 베이하이 공원 내 호숫가에는 팡산판좡이 있다. 왕실 음식 전문점이다. LG 쌍둥이빌딩 뒷길, 지하철 1호선 융안리(永安里)역에 있는 나자샤오관은 만족과 한족의 음식을 잘한다.


윤태옥 여행작가

이메일 kimy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