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레이건도, 미테랑도 저성장 흐름 못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놀라운 규모의 경제 붐이 일었다. 1인당 평균 소득은 연 2.92%의 속도로 증가해 25년 만에 세계인들의 생활수준은 두 배로 나아졌다. 새집과 자동차, 소비재 상품은 일반 가정의 손에 닿을 만한 곳에 쏟아졌다. 이런 풍요로움이 지구촌 전체에 보편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상 그렇게 많은 사람이 빠르게 잘살게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1973년을 정점으로 세계 경제는 극심한 침체와 변덕스러운 흐름을 겪어야 했다. 오일 쇼크와 같은 에너지 가격 폭등, 금융 위기, 치솟는 실업률이 세계에 불안감을 몰고 왔다.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정도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며 예외적인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들마저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침체를 겪었다. 정책 결정자들은 세금 감면이나 재정 확대 등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일시적 처방일 뿐 소득증가와 성장률의 둔화를 막을 수 없었다.

학자들은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알아내려 지난 수십 년간 씨름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가 정상이고, 과거 고성장기가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시기가 아닐까 하는 발상의 전환도 있었다.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크 레빈슨은 《세계 경제의 황금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에서 좋은 시절은 끝났으며, 어떤 정부도 그때로 되돌릴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는 1945년 이후 세계에서 일어난 경제 부흥과 침체의 역사를 추적한다. 황금기를 종식시킨 힘에 대응할 확실한 방안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한다.

저자는 2차 대전 후 경제 호황의 주요인으로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을 꼽는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번창했던 12개 경제 대국의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4.6%라는 높은 속도로 증가했다. 이는 사회복지제도 팽창의 재원인 부를 창출했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오일 쇼크 직후인 1974년에는 생산성 증가세가 곤두박질쳐 황금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평균 2%에 머물렀다. 몇몇 예외적인 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생산성 하락을 경험했다.

전후 노동력에 유입된 청년 인구는 보편화된 교육으로 부모세대보다 읽고 쓰는 능력이 현저히 뛰어났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력 유입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생산성의 빠른 향상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갑자기 과거의 번영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 국가들에서는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같은 규제 완화, 민영화, 작은 정부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복지 예산을 줄이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며 경기침체를 막으려 애썼다.

저자는 레이건이 옹호하던 시장지향 정책도,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착수했던 국가통제주의적 개혁도 저성장이란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저자는 “미래의 복리 증진은 얼마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부는 교육과 이민정책 등을 통해 혁신이 잘 이뤄지도록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기술력을 갖춘 노동자를 더 생성하고 신생기업의 성장을 용이하게 하면 심각한 침체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