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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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 기준으로 한국의 중소기업 비중은 99%다. 중소기업이 일자리의 88%를 차지한다. 하지만 인재들은 대기업으로만 몰린다. 연봉 격차뿐 아니라 교육비 휴가 등 사내 복지와 자기계발 시스템 등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사업 안정성과 사회적 인지도 등도 고려한 선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의 이직률이 5.0%로 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대기업 이직률은 2.8%로 201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신간 《내가 작은 회사에 다니는 이유》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저자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테몬가쿠인대 경영학부 교수다. 경영조직론 등을 가르치는 간키 나오토 교수 주변에는 오사카가 속한 간사이지방 중소기업에 취업한 학생이 많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지인과 졸업생의 사례를 보며 고민을 듣고 책을 썼다.

일본도 전체 기업의 99.7%가 중소기업이다. 부품, 소재 등 중간재기업이 많다. 일본 로봇산업의 발전과 성장이 중소기업의 저력에서 나왔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에 비해 쏠림은 덜하지만, 일본에도 대기업 선호 현상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저자는 제조업은 직원 300명 이하, 도매업과 서비스업은 100명 이하, 소매업은 50명 이하 기업을 중소기업으로 분류했다. 일본 전체 기업 421만 개 중 대기업은 1만2600개, 상장 회사는 3600개다. 책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 중 70% 정도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저자는 중소기업의 연봉이 대기업에 못 미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대기업의 장점으로 꼽는 안정성은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정년까지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일정 금액의 월급을 꾸준히 받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개념이라면 기업의 크기가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뒤처져 파산한 코닥과 대만 훙하이에 인수된 샤프를 예로 들었다. 단순히 규모를 따질 것이 아니라 자본과 경영기반이 탄탄하고 경기 악화 등 환경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덜 받는 기업을 선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소기업도 중소기업 나름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제조업종 내 회사라도 무엇을 생산하는지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도 대기업 협력회사인지, 자사 브랜드를 갖춘 독립적인 회사인지도 구분해 살펴야 한다.

저자는 엄청난 자본을 투입하고 막대한 운영자금을 들여 대량 생산하고 대량 판매하는 대기업의 시대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소비에도 개성이 묻어나고 취향이 다양해진 요즘은 틈새시장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민첩한 중소기업의 활약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발 빠른 작은 회사들의 시대’라고 정의한 이유다.

대표이사와 주요 이사회 임원 등 의사 결정권이 있는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중소기업의 장점이다. 대기업은 연수 프로그램과 사수-조수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스스로 롤모델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창업자나 시대에 맞는 개혁을 꿈꾸는 사장과 함께 일한다면 더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곳에서 오래 일하면 경영 이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장에게 직접 얘기를 듣다 보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지인의 말도 전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에서 다지는 꿈의 크기도 자연스레 커질 수 있다. “산책하려고 후지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다”는 경영 컨설턴트 고미야 가즈요시의 말을 빌려 정상을 목표로 삼아야만 최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성장과 성공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이 책은 작은 회사에 어떻게 빨리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을 준다. 다만 ‘작은 것부터 꾸준히 하라’거나 ‘상사나 선배의 경향을 잘 알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라’는 등의 지침은 당연한 것이어서 울림이 작다. 현장에서의 직접 체험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간접 체험이라는 한계도 보인다. 후배를 지도하는 방법이나 원만한 소통을 위한 기술은 기업의 크기에 관계없이 필요한 능력이다. ‘일도 인생도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부제에 걸맞은 내용이 부족한 점이 조금 아쉽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