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나는 직접 투쟁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 꼭 그림을 남기고 싶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1830년 10월 형 샤를 앙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1830년 7월28일 왕정복고에 반대하며 봉기한 시민들이 시가전 끝에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린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흥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들라크루아는 전투를 벌이는 시민군의 모습을 상상력을 동원해 파고들었다. ‘1830년 7월28일’이란 부제가 붙은 명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앞가슴을 드러낸 채 삼색기를 들고 선동하는 여성을 등장시켜 ‘여자는 우아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당대의 경향에도 정면 도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을 사들였지만 그림의 주제가 너무 선동적이란 이유로 들라크루아에게 돌려보냈다. 나폴레옹 3세 때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됐고,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인생만세’란 제목의 앨범 표지 이미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지난달 8일 파리를 방문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이 그림을 관람하는 모습이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의 노출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사우디의 지도자가 가슴을 드러낸 여성 그림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