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그는 왜 자신의 교향곡을 '묘비'라고 불렀나
“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죽기 직전 남긴 말이다. M.T. 앤더슨이 쓴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이란 책의 제목처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죽어간 누군가를 위로하는 곡이었다. 그가 만든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군의 포위 공격으로 초토화된 고향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을 단결시키고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 쇼스타코비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친척들이 죽어 모르는 곳에 묻혔다. 친구 메이예르홀트(연극 연출가)나 투하쳅스키(후견인)의 묘비를 어디다 세우겠는가. 오로지 음악만이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레닌그라드 전투와 그 참혹한 현장 속에서 교향곡 7번이 탄생하게 된 수년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쇼스타코비치 평전이다. 저자는 레닌그라드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며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겪던 시민들이 이 한 곡으로부터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스탈린 정권이 지배하는 소비에트 당국은 반(反)나치 투쟁 찬가로 이 곡을 치켜세웠다. 이 때문에 이 곡이 나치에 대한 저항인지, 수많은 이들을 죽인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저항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교향곡 7번에 대한 해석과 마찬가지로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평가도 양 갈래로 갈려왔다. ‘권력에 타협하고 순응해 목숨을 건진 겁쟁이 음악가’와 ‘권력을 은밀히 조롱한 소신 있던 사람’이라는 평가다. 저자는 그 역시 그저 살아남고 싶어 한, 예민하고 약한 한 인간이었다는 점에 집중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정권이 자신의 삶을 영웅시하고 선전하는 것에 분개했고, 고초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수많은 편지를 쓰고 뛰어다녔다.

숙청의 피바람이 불던 소비에트 치하에서 비밀정치경찰인 ‘내무인민위원회(NKVD)’가 접근해 자신들을 위한 활기찬 춤곡을 작곡하라고 했을 때 과연 우리였다면 거부할 수 있었을까. 투옥된 친척들의 목숨이 내 행동 하나에 달려 있지 않은 우리가 과연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전쟁과 정권의 감시 속에서도 쇼스타코비치는 죽은 이들과 살아남은 이 모두에게 교향곡 7번을 바친 것만큼은 분명하다.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란 책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7번에 대해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인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쇼스타코비치가 강조했던 음악의 힘과 그것이 지닌 의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