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식민지 조선'의 여행자, 그들이 본 세계는?
조선 고종 때 예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지낸 민영환(1861~1905)은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여정을 《해천추범》에 남겼다. 이때 민영환은 기차를 생전 처음 타봤다. 그는 당시의 놀라운 경험을 이같이 적었다. “바람이 달리고 번개가 치는 듯하니 보던 것이 금방 지나가 거의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깥 풍경을 여유롭고 구체적으로 적은 것은 별로 없다. 대부분 출발지와 도착지 중심으로 모든 역을 좌표 위의 점처럼 기록했을 뿐이다.

반면 기차를 타고 전혀 다른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 이도 있다. 최남선(1890~1957)은 경부선이 생긴 뒤 남긴 부산 기행문 《교남홍조》에서 기차 밖 풍경 대신 시선을 객실 내부로 돌린다. 달리는 속도 때문에 바깥에 있는 자연을 지속적으로 볼 수 없게 되자 승객들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대상은 앞자리에 앉은 일본 여인이다. “저는 근심 없이 자는지 모르나, 나 보기엔 매우 근심 있는 듯한 그자의 얼굴을 보고 신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상상이 일어난다.” 민영환과 최남선 모두 기차 속 여정을 남긴 것인데, 보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여행과 생각을 한 것이다.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은 근대 조선의 다양한 여행자들의 기록을 살펴보며 그들의 여정과 시선도 함께 따라간다. 저자는 우미영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부교수다. 그는 “여행자들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며 “특히 근대 조선 여행자들의 관점과 시선은 제국(일본)-식민지(조선)라는 정치적 상황의 영향 때문에 더욱 뚜렷이 부각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선은 제국주의에 갇힌 채 나타나기도 한다. 1926년 《청년》에 게재된 《경주기행문》엔 한 학생이 경주에 수학여행을 다녀와 이렇게 기록했다. “수천년 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 심지어 남의 선도자가 되었던 우리가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것이 남에게 뒤진 것뿐이다. 이것이 자연의 원칙일까? 나가자! 힘쓰자!”

저자는 이런 학생의 기록을 보며 말한다. “식민지의 자기 역사 인식이라는 주체적 태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국의 포섭적 전략 아래 이뤄져 버렸다. 일본 제국의 프레임에 갇힌 셈이다. 식민지화된 조선의 현실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이 책은 주체적인 시선, 동경과 선망의 시선, 일제의 정치 전략에 포섭된 시선 등을 다양하게 다루며 식민지였던 조선과 세계를 바라본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