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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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노래 1300여 곡 작곡. 숫자만 압도적인 게 아니다. 김광석부터 김건모, 박진영, 성시경 등 1990년대 이후 가요계를 대표한 가수들의 작품 다수가 이 사람 손에서 탄생했다. 1989년 데뷔 이후 30년 가까이 작곡해오며 국내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 김형석(52·사진) 얘기다.

김형석은 오랜 시간 ‘히트곡 제조기’로 불려 왔지만 그 틀에 갇혀 있지 않다. 발라드부터 댄스, 힙합, 재즈 등 장르의 벽을 끊임없이 허물어 왔다. 최근엔 재능 있는 가수 지망생을 발굴하는 제작자이자 사업자로 변신했다. 이번엔 음악 편곡과 조언을 하는 뮤지컬 슈퍼바이저에 도전한다. 그의 명곡들을 모아 ‘브라보 마이 러브’란 제목의 주크박스 뮤지컬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형석은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며 “어느 문이나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갖고 싶어 여러 장르에 도전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다음달 4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진섭 서울시뮤지컬단장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열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플루티스트 제니 브라운이 월드투어 마지막이자 첫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줄거리다.

“그동안 뮤지컬 제안이 몇 번 있었지만 거절해왔어요. 노래와 시나리오가 잘 맞아야 하는데 어려웠던 거죠. 하지만 이번엔 노래와 시나리오의 균형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쿨한 느낌의 공연이 될 것 같아 도전하게 됐어요.”

그의 곡 1300여 개 가운데 26곡이 엄선됐다. “연출가와 작가분들이 곡을 골랐어요. 제가 곡을 고르면 노래에 스토리를 억지로 맞추게 되잖아요. 곡 선정 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거기엔 그분들의 엄청난 계산과 노력이 들어간 거죠.”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 리스트를 살펴보면 그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 김광석의 ‘사랑이란 이유로’부터 박진영 ‘너의 뒤에서’, 임창정 ‘늑대와 함께 춤을’, 성시경 ‘내게 오는 길’, 베이비복스 ‘킬러’, 신승훈 ‘I Believe’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로 편곡하면서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관객들이 ‘유행가 그냥 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가장 걱정했다”며 “전혀 다른 느낌이 나게 하면서도 원곡의 특성을 잘 살려 편곡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시야는 세계 음악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키위미디어그룹’ 회장, 실용음악 아카데미 ‘케이노트’ 대표를 맡으며 중국 시장에도 진출한 것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최근 시작한 케이노트는 정식 오픈 전인데도 300여 명의 현지 가수 지망생이 몰릴 만큼 화제다. 연말엔 베이징에도 문을 연다.

“이제 음악적 국경이 사라지고 있어요. 중국에서 리듬을 만들면 한국에서 건반을 치고 일본에서 안무를 입히는 식의 음악적 협업이 디지털 하나로 이뤄지는 세상이잖아요.”

결국엔 다시 작곡가로 남는다는 생각이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작곡가로서 조용히 곡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 그래도 아직은 젊으니 더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