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 이외의 존재가 될 수 없죠"… 하루키 새 단편 '버스데이 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단편 《버스데이 걸》(비채)이 번역 출간됐다.

5~8편의 단편을 모아 단편모음집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루키는 역시 달랐다. 64쪽짜리 단편 한 편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하루키는 “2002년 생일을 주제로 한 단편모음집을 펴내는 일을 맡았을 때 생일을 주제로 한 단편을 찾아내다 결국 직접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소설은 ‘그녀’로 지칭되는 한 여성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스무 살 생일에 있었던 일을 듣는 액자식 구성이다. 생일날에도 여느 때처럼 이탈리안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를 나간 그녀는 “오후 8시에 사장이 있는 608호에 저녁을 가져다 주라”는 부탁을 받는다. 사장은 식당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친 적이 없고, 늘 저녁식사로 치킨요리를 고집하는 미스터리한 인물. “몇 살이냐”고 묻는 사장의 질문에 소녀는 “오늘이 스무 살 생일”이라고 답한다. 사장은 스무 살 생일에 저녁식사를 배달하러 온 그 소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 듯, 한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 말한다.

“그때 소원으로 ‘그것’을 선택한 것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57쪽)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화자의 태도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녀가 무슨 소원을 말했는지, 그 소원이 이뤄졌는지는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란 어디까지 가든 자기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란 대사야말로 하루키가 던지는 인생 철학에 관한 ‘묵직한 직구’다.

짧은 분량이지만 하루키는 곳곳에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숨겨놓았다. 액자식 구성의 전개는 유려하다. 일본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돼 화제를 모았다.

독일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시크가 빨강 주황 분홍 등 세 가지 색으로만 그린 일러스트는 십여 년 전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신비한 이미지를 배가시킨다. 일러스트를 포함한 64쪽 분량의 단편 가격이 1만3000원이나 되는 건 단점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