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예술의 혁명'과 '혁명의 예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살짝 미소라도 보이면 공연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이내 아무 움직임이 없으면 ‘너무 이질적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봄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1일과 3일 평양에서 열렸던 우리 예술단의 공연 얘기다. 나흘 뒤 남한에서 공연 실황이 공개되자 네티즌과 각 매체들은 무엇보다 영상 속 북한 관객의 반응을 살피기 바빴다. 공연에서 관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이런 무대를 볼 땐 유독 공연의 내용보다 관객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우리의 문화와 그들의 문화가 극적으로 만나는 순간, 평소엔 체감하기 어려웠던 서로를 느끼기 위해 열심히 탐색하는 것이다. 그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 더듬어 보고, 언젠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 점쳐보기도 한다.

4월의 봄이 시작되며 펼쳐진 남북한 문화 교류의 장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벅찬 감동을 줬다. 하지만 과거보다 나아졌어도 여전히 관객들의 얼굴에 드러난 낯선 느낌과 어색함은 우리가 더 큰 과제를 앞에 두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남한의 ‘예술의 혁명’과 북한의 ‘혁명의 예술’. 여기서부터 시작된 간극을 서서히 좁혀 나가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1일과 3일 평양에서 열린 남한 예술단 공연.
지난 1일과 3일 평양에서 열린 남한 예술단 공연.
‘예술의 혁명’과 ‘혁명의 예술’. 단어의 순서만 바꿨을 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이 다르고, 이로 인한 차이도 크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대한민국은 대중문화는 물론 연극, 무용 등 예술을 그 자체로 발전시켜왔다. 국가의 지나친 개입은 가급적 자제하고 예술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때로 이 선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시민 사회는 이를 막아내 왔다. 순수한 취지의 예술 발전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반면 북한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남한은 예술을 소비자들이 선택하지만, 북한은 예술을 공급자들이 선택하는 구조다. 혁명이란 과업을 위해서다. 일부 학자들이 ‘극장국가’라는 개념을 북한에 접목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던 작은 나라 ‘느가라’를 가리켜 ‘극장국가’라고 처음 불렀다. 이곳에선 국가의례부터 시작해 모든 행위에 국가의 의도와 연출이 적극 개입됐다. 국가 스스로를 하나의 극장으로 여기고 이 극장에 어떤 작품을 상영해서 보여줄지 선택한다. 권력 그 자체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예술 공연은 이 상영작들의 중심축이 됐다. 북한도 긴 분단의 시간 동안 이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일까. 1985년부터 지금까지 평양에서만 10회가 넘는 우리 측 공연이 있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남한에서 무대를 선보였지만 문화적 융합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70여 년이란 분단의 시간을 이 짧은 만남만으로 다 극복할 순 없다. 그러나 ‘더 자주 만나거나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겠지’라고만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심지어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화교, 조선족들과도 문화적 융합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건 서로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각 잡힌 율동과 퍼포먼스에 놀라워하지만 그게 전부다. TV를 켜면 북한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방송이 많이 나온다. 탈북자들도 나와 북한에서의 삶을 전한다. 그런데 본질이 아닌, 자극적인 요소와 비방에 가까운 발언들이 적지 않다.

통일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가.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예기치 못한 순간 무너졌듯 역사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핵과 경제 문제로만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할 것 같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을 이룬 후 경제 수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동독 출신 사람들 중 70%가 스스로를 독일 사회에서 ‘2류 시민’이라 여기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 관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어떤 모습의 하나가 될지는 우리의 준비에 달려 있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