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돈만 좇으면 이류… '존재 이유'를 팔아야 일류 기업
바이킹이 도적질을 하다가 신기한 물건을 하나 발견하고 집에 가져갔다. ‘황금빛 수도꼭지’였다. 부인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해하자 그는 의기양양하게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런데 훔치기 전만 해도 물이 콸콸 쏟아지던 물건이 집에 가져오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근원에 대한 고찰 없이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조작해 값진 것을 얻으려는 우리의 삶을 풍자한다. 기업에서도 ‘황금 수도꼭지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130년 역사의 미국 백화점체인 시어즈는 1990년대 초 실적 부진에 시달리자 직원들에게 무조건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방안을 강구하게 했다. 매출을 독려하기 위해 직원들에 대한 평가·보상 방식을 바꿨다. 기본급을 없애고 실적에 따른 차별 보상시스템을 도입했다.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실적을 달성하지 못 하면 해고도 불사하겠다고 압박했다.

벼랑 끝에 몰린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객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기까지 했다. 고객의 불만과 항의가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 비윤리적인 영업 행태라며 소송을 제기당하기도 했다. 시어즈는 결국 대규모 소송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몰락의 길을 걸은 시어즈는 2003년 K마트에 인수합병됐고 대규모 손실로 파산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회사나 사람들은 그런 성과의 원천과 이어진 파이프라인, 그리고 수도꼭지와 잘 연결돼 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황금 수도꼭지》에서 “이런 회사나 사람들은 존재 이유를 ‘목적’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목적이란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생계를 넘어서 생존해야 하는 이유를 각성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틀을 재창조한 회사와 사람들이다.

저자는 존재 이유를 알고 그것에 모든 것을 정렬시키는 것을 ‘목적경영(management by purpose)’이라고 칭한다. 이런 기업들은 의미 없는 경쟁에서 벗어나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2006년 음료회사 펩시코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인드라 누이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돈이 되는 제품만 팔아서는 안 되고 ‘목적’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펩시코는 설탕·지방을 줄이면서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에 사활을 걸고 인적·물적 투자를 집중했다. 아쿠아나 생수, 트로피카나 오렌지주스, 퀘이커 오트밀 등을 핵심 제품군으로 추가했다. 펩시코는 콜라 전쟁에서는 코카콜라에 졌지만 전체 매출과 주가에서는 앞서 나갔다. ‘설탕물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인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하며 성장했다.

저자는 소위 일류기업이라고 알려진 모든 기업은 세속적으로 돈을 벌던 단계를 넘어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제2의 창업’을 경험한다고 전한다. 삼성그룹이 다시 태어난 것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 임원들이 기업 소명의식을 고취한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통해서다. 이 여행에서 ‘삼성의 신경영’을 발견하고 발표했다. 일본의 ‘경영의 신’으로 추앙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는 회사의 목적을 발견한 날을 공식적인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저자는 목적이 이끄는 혁신만이 자발적인 혁신이라고 강조한다. 이 혁신을 제도화해 시스템과 문화로 만든 결과만이 진정한 성과라고 한다. 목적에 대한 철학을 잃어버리고 벤치마킹이란 명분으로 경쟁기업을 따라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혁신이 주된 경쟁력 요소가 된 지금의 기업 환경은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통해 더 숭고한 목적에 다가가는 올림픽 경기장과 같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