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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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다. 국내 직장인 세 명 중 한 명은 가상화폐 투자 경험이 있다. 이런 가상화폐 투자 열기에 비해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뜨겁지 않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세계 주요국은 앞다퉈 블록체인 연구에 뛰어들어 활용법을 모색 중이다. 가상화폐라는 나무를 넘어 블록체인이라는 숲이 바꿔놓을 생태계를 그린 신간이 나란히 출간됐다. 블록체인의 등장이 예고한 혁신과 변화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국제송금, 증권결제 비용 절감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입력한 블록(block)을 시계열로 체인(chain)처럼 연결해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거래 기록을 수정할 수 없어 부정 거래를 막을 수 있다. 관련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해 일의 효율도 높여준다. 철저한 분산화와 암호화로 해킹이 어렵고 시스템 장애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인터넷 이후 최대의 발명’이라는 수식이 붙을 만하다.

[책마을] '인터넷 이래 최대 발명'… 블록체인, 이름값 할까
《애프터 비트코인》 저자는 가상화폐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기술로 주목받았던 블록체인을 독립된 기술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주목한다. 가상화폐는 기존 화폐와 경쟁해 주류가 되진 못하더라도 블록체인은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담당해온 역할을 대체해 금융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책의 전반부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메커니즘과 쓰임새, 거품 논란 등을 담아 새로울 게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의 잠재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3장부터 시작한다. 신뢰와 보안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의 강점은 효율성이다. 이를 통해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블록체인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금융거래에 드는 비용이 10분의 1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자는 국제송금과 증권결제를 블록체인 활용도가 가장 높을 분야로 꼽았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국제 송금액에 들어가는 수수료 중 연 580조원을 아낄 수 있고 연 8경60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국제 증권결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무역금융이나 신디케이트론, 채권 발행 등 다방면의 금융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실험이 한창이다. 영국 중앙은행, 캐나다 중앙은행, 싱가포르 통화감독청 등은 비트코인 같은 ‘사적 디지털화폐(private digital currency)’가 아니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구상하고 있다. 2016년 7월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국내총생산(GDP)의 30% 규모로 발행하면 거래비용 감소 등으로 GDP가 3% 증가한다고 소개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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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기반한 분권화의 시작

일본은행 출신의 결제시스템 전문가가 쓴 《애프터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을 금융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와 기자 출신이 쓴 《트루스 머신: 블록체인과 세상 모든 것의 미래》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와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일어날 변화를 예측한다.

금융뿐 아니라 인증 분야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스스로 신분을 증명할 길 없는 난민이나 자신의 자산 규모를 공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신원과 재산을 간편하게 증명할 수 있다. 이를 통한 신용이 창출되고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저작권 보호와 보건의료, 인권 및 환경 보호, 제품이력 추적과 개인 간 전력 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더 이상 어떤 기록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공인된 기관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해당 거래 기록이 진실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언제나 증명할 수 있고 어떤 외부 기관도 통제할 수 없다. ‘진실’을 담고 있는 ‘수정불가능한’ 장부를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나눠 갖는다. 정보 공개나 이용에 대한 권한은 그 정보를 제공한 개인에게만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파괴적 혁신이 탈중앙화와 분권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앞장설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정보기술(IT) 장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통제받지 않는 인터넷 네트워크 등이 기반이 돼야 가능한 변화라는 단서가 붙는다. 블록체인이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트루스 머신’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