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부부 소장품 자선경매에 출품될 앙리 마티스의 유화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
록펠러 부부 소장품 자선경매에 출품될 앙리 마티스의 유화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
작년 3월 101세를 일기로 타계한 데이비드 록펠러(1915~2017)는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인 ‘석유왕’ 존 록펠러의 손자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9년부터 1981년까지 체이스맨해튼은행을 이끌었다. 인수합병을 통해 이 은행을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로 성장시켰다. 체이스맨해튼은행에 미술관을 꾸밀 정도로 예술을 사랑한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사회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은퇴 뒤에는 자선사업가,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미술품과 장식품, 아내(페기 록펠러)와 함께 모은 1550여 점의 컬렉션을 자선경매를 통해 판매해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록펠러의 이 유언을 실천하는 ‘세기의 자선경매’가 다음달 8일부터 사흘간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펼쳐진다.

◆5300억원대 세기의 경매쇼

피카소·모네·마티스… 록펠러 부부 소장품 5300억대 '경매쇼'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록펠러 가문이 수집한 미술품과 애장품 1550여 점을 오프라인(5월8~10일)과 온라인 경매(5월1~11일. 100~1만달러 소품)에 부친다고 11일 발표했다. ‘페기&데이비드 록펠러 컬렉션’이란 제목이 붙은 경매 리스트에는 피카소, 모네, 마티스, 쇠라, 마네, 고갱, 코로, 칼더, 드 쿠닝 등 거장들의 걸작은 물론 유럽 및 한국 중국 일본의 고미술품, 디자인가구와 인테리어 장식품, 진귀한 도자기가 대거 올라 있다. 추정가 총액도 5억달러(약 5300억원)에 달한다. 판매 수익금은 하버드대, MoMA, 록펠러대 등 문화, 교육, 의학, 환경 연구 분야 12개 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다.

자선경매 홍보를 위해 이날 한국을 찾은 코너 조던 크리스티 부회장은 “크리스티는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유명 인사의 소장품을 경매에 부쳐 화제를 모았다”며 “록펠러 부부의 소장품 자선경매도 그에 못지않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피카소 748억원대 작품 등장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
파블로 피카소의 ‘꽃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피카소가 1905년 완성한 누드화 ‘꽃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다. 보헤미안 소녀를 우수 어리게 묘사한 수작이다. 애조 띤 느낌이 물씬 나는 이 그림의 추정가는 9000만~1억2000만달러(970억~1300억원)다. 앙리 마티스의 유화 ‘목련 옆에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도 추정가 7000만~9000만달러(750억~970억원)에 나온다. 1923년 프랑스 니스에서 그린 이 작품은 오달리스크 테마 작품 중에서 화려하면서도 자유분방해 마티스 작품 중 최고가 낙찰이 점쳐지고 있다. 록펠러는 이 그림을 평생 거실에 걸어놓고 감상했다고 한다.

클로드 모네의 1914~1917년 작인 ‘수련’은 추정가 5000만~7000만달러(540억~750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록펠러는 회고록에서 “늦은 오후 연못의 분위기가 환상적으로 묘사돼 작품을 본 즉시 바로 구입을 결정했다”고 적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작품 ‘베니스 풍경’도 출품됐다. 화면의 절반을 연한 산호색으로 통일하고, 하늘과 운하만 푸른색으로 처리해 담담하고 몽환적으로 묘사했다. 마네의 정물화 ‘라일락과 장미’(700만~1000만달러), 모빌 조각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250만~350만달러),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드 쿠닝의 작품도 응찰 경쟁이 예상된다.

◆조선시대 소반 등 19점도 나와

다음달 10일 열리는 ‘여행과 아메리카나’ 테마 경매에서는 록펠러가 한국 등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수집한 고미술품이 대거 쏟아진다. 한국 작품으로는 조선시대 소반, 반닫이, 목안(나무로 만든 기러기), 근대 한국화 등 19점이 나와 있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제작된 황금 아미타불(40만~60만달러)은 정교한 장식과 빼어난 표현이 돋보인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록펠러 가문은 ‘미국의 메디치가’로 불렸다”며 “록펠러 부부의 숭고한 뜻이 반영된 자선경매는 예술사랑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