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독일식 적폐 청산 뒤엔 '고백과 참회' 있었다
남북한이 통일된 뒤 북한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 남북의 모든 정당과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다면 어떨까. 더구나 임기 말기, 연임을 찬성하는 비율이 70%가 넘는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 같지만 독일 제11대(2012~2017년)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의 실제 이야기다. 의원내각제에서 임기 5년의 국가원수인 독일 대통령은 상징적인 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우크 대통령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회고록》에서 그는 시골 목사에서 어떻게 최초로 동독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독일 북동부 작은 마을 로스토크에서 태어난 그는 열한 살 되던 해, 항해사 아버지가 나치 간첩이었다는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을 겪는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다.

통일 이전부터 동독 민주화 운동에 적극 가담한 가우크는 통일 이후 1991~2000년 국가보위부 문서관리청장을 지냈다. 가우크는 문서관리청장을 지내는 동안 동독 공산체제에 저항하던 이들이 국가안전부(동독의 억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고, 체포와 구금 등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하던 초법적 국가기관)로부터 받았던 감시와 탄압을 과감하게 밝혀내 큰 인기를 얻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의 고백과 참회이다.” 문서관리청 책임자로 일하던 시절 가우크가 했던 이 말에서 그가 과거 청산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었으나 이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뜻밖의 혼란 등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한반도에 급속도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통일 후 동·서독 화합을 이끈 가우크의 이 같은 진술은 한국 사회를 향한 의미 깊은 조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