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신문로2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함재봉 원장은 “일본이 패망한 이후 한반도로 몰려든 다섯 가지 대안은 아직도 한국인의 정체성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 23일 서울 신문로2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함재봉 원장은 “일본이 패망한 이후 한반도로 몰려든 다섯 가지 대안은 아직도 한국인의 정체성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국 사람.’ 지금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이 단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란 호칭이 처음 사용된 건 1897년 12월2일자 ‘독립신문’에서였다.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자 이전 ‘조선 사람’을 대신할 호칭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만 사용되던 한국 사람이란 용어가 보편화된 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부터다. 한국 사람은 20세기 후반부에 생긴 새로운 인간형인 셈이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 원장(60)은 지난해 출간하기 시작한 《한국 사람 만들기》(아산서원·총 5권 예정) 시리즈에서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를 묻고 그 답을 찾는다. 함 원장은 한국 사람의 특질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다섯 가지 담론을 △친중 위정척사파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 △친소 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로 분류해 제시한다. 이는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과 심해지는 진보·보수 또는 좌우 갈등을 이해하는 힌트를 제공한다. 지난 23일 서울 신문로2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함 원장을 만났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주제를 잡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미국 대학 교환교수로 가시면서 초등학교 때 외국에서 생활했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인이 누구냐’고 되물어오기 일쑤였습니다. ‘한국인은 누구인가’란 질문을 그때 하기 시작했던 거죠. 한국인이라는 집단을 묶어주는 건 언어도, 종교도, 인종도 아닙니다. 상위 50대 성씨 본관 중 14개가 귀화 성씨 본관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적인 것’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거꾸로 ‘한국적인 것이 뭐냐’고 질문받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아요.”

▶한국 사람을 다섯 가지 범주로 설명했는데요.

“조선이 망한 뒤 지식인들은 조선을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섭니다.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고 외친 쪽은 전통 문명인 주자성리학을 물려받은 위정척사파입니다. 삼강오륜, 충효사상 같은 주자성리학의 핵심 가치는 아직도 한국인이 지켜야 할 지배적인 윤리관입니다. 일본의 선진 문물을 직접 보고 돌아온 김옥균 등의 ‘친일개화파’는 메이지유신 이후 눈부시게 발전하는 일본을 모델로 삼은 이들이죠. 이들 개화파가 실패하면서 윤치호 등은 미국 기독교에서 대안을 찾았습니다. 한국 근대교육과 의료의 토대를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마련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소련과 공산주의가 한국사에 미친 영향도 지대합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들어옵니다.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도 남북한이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거죠.”

[월요인터뷰]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586과 박정희세대간 갈등… 한국사회 시스템에 대한 합의 필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외국에서 왔다는 뜻입니까.

“한국이 지금까지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것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가 바뀌면 재빠르게 이를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유교를 내세우면 조선도 재빨리 이를 받아들이는 식으로요.”

▶다섯 가지 담론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무엇입니까.

“단연 친중 위정척사파의 유교적 세계관이죠. 중국에서도 제사 지내는 문화가 사라졌는데 한국은 아직 전체 가구 중 71%가 제사를 지냅니다.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도 여기서 파생됐고요. 국가 시스템적으로는 친미 기독교파가 득세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 체제 등 제도를 흡수했으니까요. 한국의 역대 대통령 11명 중 개신교 신자가 4명이나 됩니다.”

▶진보·보수 간 갈등이 심합니다. 한국 좌파의 원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한국 좌파는 유교적 이념과 민족주의가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그룹입니다. 시장과 돈을 천시하고,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여기고, 가난하지만 평등하게 서로 나누는 작은 공동체를 좋아하는 건 주자학적 이상을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마르크스주의가 가세합니다.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를 앞세우는 마르크스주의는 일본에 수탈당하던 조선을 포함한 많은 제3세계 지식인에게 영감을 줍니다.”

▶한국 우파의 뿌리는요. 좌우 갈등은 어디에서 시작됐다고 봅니까.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우파 세력은 특이한 모임이에요.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국가시스템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당시 값싼 노동력과 토지, 외국 자본으로 물건을 제조·수출해 돈을 버는 구조는 크게 힘을 발휘했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정통 보수와는 다르게 한국 우파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에서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좌우 갈등은 민주화 세력인 586세대(1960년대 태어난 1980년대 학번)와 산업화 세력인 1960년대 세력(박정희세대) 간 갈등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죠.”

▶진영 간 갈등이 극심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한국의 경제 시스템은 늘 이념적으로 어정쩡했습니다. 1970~1980년대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를 국가 주도의 산업 발전 속에서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죠. 그러나 ‘미들 인컴 트랩’(middle income trap: 초기 빠른 성장을 하다가 중진국 또는 중산층에 그치는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한국은 다른 경쟁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갈 것인지, 세금을 50~70%씩 걷어 나누는 북유럽식 모델을 흡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엄청난 저항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촛불 혁명 역시 마찬가지예요. 원리원칙과 규범이 정확하지 않은 흐리멍덩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셈이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다섯 가지 담론 중 어디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나요.

“세 사람 다 친중 위정척사파적 세계관에 민족주의적 개념을 내재하고 있다고 봐요. 모두 강한 국가주의자라는 것도 특이하죠. 좌파니 우파니 해도 세 사람 모두 시장을 내버려두기보다 하나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 담론은 여전히 한국 안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진보·보수 모두 서로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조선이 무너지고 나라를 빼앗긴 뒤 ‘어떤 국가를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좌·우파 모두 치열했습니다.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처참하고도 장렬합니다. 이런 이해를 토대로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라고 봐요. 다만 세계사 흐름을 보면 자유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라는 두 축을 받아들인 국가가 부강한 나라로 성장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역시 이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시대적 패러다임이 산업화, 민주화에서 개인화로 바뀌는 듯합니다.

“지금 한국에선 양립할 수 없는 문명이 충돌하고 있어요. 제사를 지내려는 어른과 거부하는 젊은이, 권위주의적 문화를 강요하는 윗세대와 반대하는 젊은 세대가 대표적입니다. 개인의 자유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게 젊은이들의 인식입니다. 최근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역시 ‘육체적 개인주의’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어요.”

▶2018년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요.

“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아직도 굉장히 가변적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보편화됐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인만의 정체성’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합의가 일단 있어야 정체성이라 불릴 수 있는 것도 나올 겁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만의 ‘리추얼(ritual·의식)’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모두 국적 불명의 ‘짬뽕 의식’이지 않습니까.”

함재봉 원장은 누구?

아버지인 함병춘 씨(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의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났다. 고교 이후 쭉 미국에서 공부하며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아시아 사람이 미국에 많지 않던 1960년대 유년 시절 ‘한국인이 뭐야(What is Korean)?’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싹텄다.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의 특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한국 역사와 문학에 심취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승만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 목사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사람만의 정체성’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 안에는 기독교 집안 문화 외에 민족주의적 성향도 내재돼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친은 1983년 발생한 아웅산테러 사건 때 순직했다.

△1958년 미국 보스턴 출생 △1980년 캐나다 칼턴대 경제학 학사 △1992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석·박사 △2005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7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장 겸 정치학과 교수 △2010년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2010년~ 아산정책연구원장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