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LCD 화면에 설원·전쟁 연출, 무대효과 만점 … 감정이입은 '글쎄'
요즘 유행하는 대형 세트는 없었다. 무대 뒤에 둘러 세운 곡선 LCD(액정표시장치) 화면이 무대를 꾸미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러시아 설원, 모스크바 시내,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 등의 영상을 보여줬다. 대형 세트의 공백은 다수의 앙상블(코러스 배우)과 조연 배우가 메우기도 했다. 상당수 장면에서 앙상블과 조연 10명 이상이 등장해 때로는 군무를 했고 때로는 북적이는 거리 등을 표현하며 스스로 배경이 됐다.

오는 5월7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닥터지바고’(사진) 무대다. 이 작품의 한국 공연은 2012년 초연 이후 6년 만이다.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리드프로듀서(프로듀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로 참여해 2011년 호주 시드니, 2015년 미국 브로드웨이 등 외국 무대에도 올렸다. 신 대표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헝가리, 폴란드, 독일 등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다. 원작은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장편소설. 내용은 원작과 같다. 러시아혁명 격변에 휘말린 두 연인의 운명을 그린다.

이 뮤지컬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연출이 아니어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무대에는 탁자, 침대, 기차간 등 중소형 세트가 전부지만 무대가 빈약해보이지는 않는다. 서사적 배경은 혁명과 전쟁이지만 러브 스토리라 극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기획사 오디컴퍼니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지바고와 라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집중하는 쪽으로 각색했다. 예컨대 지바고가 사라진 뒤 그의 아내와 동료들이 지바고를 애타게 기다리는 내용의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를 빼는 대신,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을 강조하는 넘버를 넣었다.

하지만 관객이 등장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충분한 단서를 주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적지 않다. 지바고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장면도 그렇다. 지바고는 생이별을 하게 된 가족 걱정을 한껏 하다가 갑자기 돌변해 라라와 세레나데를 부른다.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를 짧은 무대로 축약하다보니 생긴 문제다. 6만~14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