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리얼리티 쇼 같은 '트럼프 백악관' 뒷이야기
“그(트럼프)는 오래전부터 독살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가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겨 먹는 이유 중 하나였다. 거기에선 누구도 그가 올지 알 수 없고, 음식은 미리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1월 말 제60회 그래미상 시상식에 깜짝 등장해 《화염과 분노》의 일부분을 읽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의 민낯을 속속들이 폭로해 파문을 일으킨 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과 트럼프 정부 각료들은 ‘가짜 뉴스’ 같은 책을 읽었다며 바로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가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를 파헤친 책 《화염과 분노》가 국내에 출간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출간 금지까지 시도했지만, 미국 출간 1주일 만에 140만 부가 팔려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저자는 트럼프 정부 전·현직 관계자와 200여 차례 인터뷰를 바탕으로 백악관 내부의 권력 투쟁과 혼란상을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아냈다. 지난 대선을 전후한 ‘트럼프 이너서클’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대통령 재임 1년 동안 트럼프 정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의 난맥상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트럼프를 포함해 선거 캠프의 누구도 2016년 11월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다. 사업가인 트럼프가 기대한 것은 당선이 아니라 훨씬 더 강력한 브랜드와 엄청난 사업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대중에게는 ‘힐러리에게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화염과 분노를 내뿜으며 패배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들은 승리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저자는 썼다.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은 하루하루가 사건 사고의 연속이기도 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참모들은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처럼 좌충우돌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라인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은 임기 초반 서로 권력을 움켜쥐고자 분투했다. 셋 중 하나가 무엇인가를 추진하면 다른 둘이 막아섰다. 자기가 미는 사람이 임명되고 탈락할 때마다 일희일비했다.

조직의 엄격한 규율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대통령 본인은 스스로 비서실장처럼 행동했다. 누구에게도 권력을 넘겨주고 싶어하지 않는 그는 중대한 결정을 트위터로 발표하곤 했다. 저자는 TV 세 대를 켜놓고 본다든지, 바닥에 떨어뜨려 놓은 옷을 절대 못 건드리게 하는 특유의 습관도 공개했다.

저자는 트럼프는 인쇄물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반문맹이나 진배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 않았다. 초유의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을 비롯한 중대 사안의 결정에는 관료들과의 조율도 예고도 없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약한 부통령으로 인식됐다. 저자는 그를 ‘쓸모없는 바지저고리’라고 깎아 내린다. 선거캠프에서의 활약으로 무명 언론인에서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 된 배넌에 대한 평가는 더 박하다. 그는 자국민 보호주의와 백인 노동자층의 이익을 강조하는 ‘트럼피즘’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이전까지 돈을 좇거나 바보의 돈을 뽑아내는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그는 통치는 충격과 공포여야 한다는 관점으로 트럼프 정부 초기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밀어붙인다.

책에 대한 논란만큼 내용의 정확성이나 신뢰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10%만 사실이어도 큰 문제”라는 미국 독자들 반응이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자극적이다. 북·미 정상회담, 제너럴모터스(GM) 철수, 철강 관세 폭탄 등 한국 관련 이슈가 계속되고 있어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하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은 분명하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