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의학계의 계관시인'이 남긴 마지막 에세이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린 이가 있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한 학자 겸 저술가 올리버 색스다. 과학을 통해 생명의 역사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알기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냈다. 암에 걸려 2015년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의식의 강》은 색스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책이다. 그는 숨을 다하기 직전 작가 빌 헤이스에게 책의 목차를 불러줬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에세이는 그가 뉴욕타임스 등에 발표한 글 가운데 직접 선별한 것이다. 각 에세이는 진화의 의미, 의식의 본질, 시간의 인식, 창의력의 발현 등 묵직한 과학적 주제를 다룬다.

저자는 다윈의 식물학 연구부터 불러온다. 다윈이 6권의 책과 70편 내외의 논문을 식물학에 할애한 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윈은 “내 평생에 난초만큼 흥미로운 주제를 제공한 생물은 없었다”며 경이로운 시각으로 난초를 연구했다. 그는 “아름다운 꽃은 창조자의 손길과 무관하며, 수십만 년에 걸쳐 축적된 우연과 선택의 결과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다윈에게 모든 식물과 동물의 의미, 적응과 자연선택의 의미였다.

저자는 다윈의 세계관을 어린 시절 집 정원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보통 꽃은 색이 화려하고 향이 강하며 벌이 꽃가루를 날라주지만, 목련나무는 색깔이 하얗기만 하고 향기도 없는 꽃을 피웠다. 그런데 목련꽃이 만개하면 딱정벌레가 그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저자는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들었다. 목련나무가 처음 나타난 아주 오래전엔 벌 같은 곤충이 아직 진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목련꽃엔 색깔과 향기가 필요 없었으며 그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딱정벌레에게 꽃가루 배달을 맡겼다는 것이다. 어린 저자는 ‘벌과 나비가 없고 꽃의 향기와 색깔이 없던 세상’이라는 아이디어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화가 지금과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니 삶이 더 소중하고 경이로운 현재진행형 모험처럼 느껴졌다”는 깨달음을 공유한다.

생명과 과학, 인간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과 탐구력이 묻어나는 글이 많다. 지렁이 같은 하등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정신세계가 있을까, 인간이 지각하는 속도와 시간은 다른 동식물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만한 것인가 등의 의문을 풀어가는 과학 여정이다. 저자의 자전적 체험, 신경학자로서 진료한 환자들의 임상기록, 다른 위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사례 등이 풍부하게 녹아 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