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과 바람처럼… 일상 속 유토피아
‘유토피아(utopia).’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가 만들어낸 이 단어는 흔히 ‘이상향’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으론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인류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는 암시가 단어 자체에 담겨 있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운명과 분노》의 저자 로런 그러프의 두 번째 소설 《아르카디아》(문학동네)는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신화 속 목가적 낙원의 이름을 딴 대안 공동체 ‘아르카디아’에서 태어나 자란 소년 ‘비트’의 일대기를 다룬다.

다섯 살인 비트는 미국 뉴욕주에서 아르카디아가 결성된 뒤 공동체에서 처음 태어난 아이다. 600에이커(약 240만㎡)에 이르는 아르카디아 부지와 널따란 숲에서 자란 비트는 안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아르카디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한다. 사춘기 무렵 비트는 그의 이상향인 아르카디아가 가출 청소년과 마약중독자, 범죄자의 피난처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결국 아르카디아는 와해되고, 비트는 평생을 함께한 이웃들과 이별한다. ‘유토피아의 탄생’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실제 인간의 역사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을 소설의 결말로 삼지 않는다. 아르카디아가 와해되는 시점은 소설의 중간 지점이다. 아르카디아는 무너졌지만 비트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바깥세상에 나와서도 그는 아내를 잃는 등 크고 작은 상실의 경험을 이어간다.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에 떨어야만 하는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세상을 뒤로하고 다시 와해된 아르카디아로 돌아간 비트는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한다. 그는 지붕에 비치는 새벽빛에서, 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서 비로소 낙원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갖는다.

저자는 꿈꾸던 삶이 무너져도 폐허 속에서 반짝이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일에 대한 숭고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토피아란 물리적으로 지구 깊숙한 어느 곳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