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온도] 사케를 마시다
“경험과 직관을 얻는 것이 좋은 사케를 만드는 비법이야.”

오늘도 데로유키 야마모토 도지(杜氏·사케 전문양조기술자)상은 야짱에게 툭 한마디 던집니다. 야짱은 데도리가와(手取川)양조장의 6대 계승자입니다. 일본 주부(中部)지방에 있는 이시카와현 데도리가와 양조장은 무려 140년이나 된 유서 깊은 양조장입니다. 어린 시절 양조장은 야짱의 놀이터였습니다. 27살이 된 야짱은 양조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케 양조장에는 젊은 인력이 별로 없습니다. 양조 기술자들은 그런 점이 안타깝습니다. 양조 기술은 한순간에 배울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도지라 부르는 최고기술자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여행의 온도] 사케를 마시다
도지의 몸에는 온통 시큼한 누룩 내와 코끝을 날카롭게 스치는 알코올의 기운이 맺혀 있습니다. 때로 도지의 땀은 사케 통 위에 맺힌 물방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막노동입니다. 거칠고 힘들고 묵묵하게 술에 대한 직관을 키워야 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야짱이 도지상처럼 빼어난 전문가가 되려면 50년이 넘는 세월을 양조장에서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젊은 그가 술도가에서 청춘을 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조장 사장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 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도 야짱은 즐겁게 그 길을 갑니다.

사케를 만드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매일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술이 익어가는 것을 살피고 어른이 되도록 응원해 줘야 합니다. 졸린 눈을 억지스레 비비면서 새벽 어스름에 야짱은 다시 일터로 나갑니다. 사케를 만드는 시기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까지 일해야 합니다. 야짱을 비롯해 12명이 넘는 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무려 6개월이나 사케를 돌봅니다. 양조장 입구에는 삼나무 가지로 만든 조형물인 스기다마가 걸려 있습니다. 스기다마의 변색 정도에 따라 양조장의 술이 얼마나 숙성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푸르던 스기다마가 누런색으로 변해야 비로소 사케가 어른 맛이 납니다. 그때쯤 돼야 마음을 감싸주는 맛, 도지상이 그토록 주장하는 조화가 깃든 맛이 우러납니다.

일본 전통술인 사케(위)는 도정에서 숙성까지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아래는 누룩을 섞는 과정.
일본 전통술인 사케(위)는 도정에서 숙성까지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아래는 누룩을 섞는 과정.
사케를 만드는 과정은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갑니다. 고급 사케를 만들기 위해서는 쌀을 아주 곱게 도정해야 합니다. 쌀이 좋고 물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혼을 담은 정성이 들어가야 진짜배기 사케가 나옵니다. 곱게 도정한 쌀을 적정한 열을 가해 쪄내고 발효시키고 섞고 익히는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이 과정을 제대로 견뎌야만 맛있는 사케가 됩니다.

섬세하게 발효시키고 다시 식히고 제대로 된 온도를 위해 얼음까지 넣어 발효시키고 다시 저어주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립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무한한 인내를 가지고 담담하게 과정을 감내합니다. 이제 사케를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작업인 효모를 넣을 차례입니다. 효모가 사케의 향과 풍미를 차별화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에 양조장마다 독특한 효모를 만들고 절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요즘 일본의 사케 시장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때 4600개가 넘던 양조장이 이제 1000여 개 남았습니다. 그나마 요즘 세대들이 맥주나 와인을 더 좋아하면서 사케를 즐기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케를 만드는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케를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사케 장인의 꿈.

사케는 결국 사람의 삶을 닮았습니다. 향긋한 사케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듯이 나는 누구에게 깊은 향을 전해주는 사람일까요?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