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위치는 집 안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고, 집 밖으로 며칠 나간다고 하면 조금 허전한 정도이다. 평생 집 밖에서 잘 해왔던 일들을, 집 안에서는 발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경북 고령으로 3박4일 팬슈머 여행을 간다"라고 하자, 아내가 "팬슈머가 무엇이야?"라고 물었다. 애절하게 설명하였지만, 아내의 한마디로 정리가 되었다."며칠간 잘~ 놀러 갔다 와"종이와 흙, 나무로 지은 집흔히 한옥은 천년을 견딘다고 한다. 한옥이 80여 채 모여있는 집성촌 마을이 있다. 경북 고령의 ‘개실마을’이다. 22촌 내의 ‘선산 김씨’가 모여 사는 마을, 타향 출신 외지인이 쉽게 정착하기 어려운 곳이다.4월의 봄날 오후, 마을은 적막하였다.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처럼 한옥만 덩그러니 있고, 사람의 인적은 없는 공간처럼 보였다. 가끔 어르신들이 전동차를 타고서 스쳐 가고 있다.경북 고령은 참으로 낯설다.대구에 인접하여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쉽게 가지 않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서대구역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경계를 넘어서면, 한적한 시골 소도시의 분위기가 난다. 고령 시내에 들어서면 몇 곳의 요양원들이 보이고, 병원도 있지만 소아과는 없다.지역살이 프로그램인 ‘고령 팬슈머(패스파인더 주관)‘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생활 인구‘라는 새로운 의미의 이해가 낯설었다.도시인들에게 귀농 귀촌은 여전히 큰 장벽이기에, 지역에서 며칠을 경험하고 살아보면서 지역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고령은 주민들 대부분이 70~80대이고 1인 가구가 많아서, 공동체 마을을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다.’랑 스튜디오‘의 청
글로벌 슈퍼 IP(지식재산권) 상어가족을 보유한 더핑크퐁컴퍼니가 전 세계 5개국 뮤지컬 월드 투어를 진행한다. 24일 더핑크퐁컴퍼니 측은 이번 월드 투어를 통해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까지 오프라인 엔터 사업 확장을 가속화 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17년 ‘핑크퐁과 상어가족’ 뮤지컬을 첫 선보인 더핑크퐁컴퍼니는 2018년 국내 키즈 뮤지컬 업계 최초로 해외 뮤지컬 시장에 진출하며 파급력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2019년 북미 투어에 본격적으로 나서, 총 45회 공연에 9만 3000석 이상의 좌석을 채우며 글로벌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올해도 더핑크퐁컴퍼니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인기 동요를 총망라한 무대를 선보이며 오프라인 패밀리 엔터 사업을 더욱 넓혀갈 예정이다.먼저, 미국 현지 팬들을 만나며 뮤지컬 월드 투어를 개시한다. 미국 방영 첫날 키즈 시청률 1위를 기록한 TV 애니메이션 ‘아기상어 올리와 윌리엄’ 세계관의 연장선으로, 뮤지컬 ‘베이비샤크 빅 브로드웨이브 투어’를 제작해 아이오와주부터 오하이오, 미네소타, 루이지애나, 텍사스까지 미국 34개 주요 도시를 순회할 계획이다. 아기상어와 바닷속 친구들의 모험 이야기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라이브쇼를 선사하는 한편, 공연에 앞서 포토 이벤트도 펼친다.일본에서는 도쿄, 치바, 사이타마 등 관동 지역을 시작으로, 고베, 나가노, 이바라키 등 일본 열도 전역에서 ‘베이비샤크 라이브: 히든 트레저’ 뮤지컬 공연을 펼친다. ‘핑크퐁’과 ‘아기상어’가 미지의 보물을 찾는 여행기 속에, 환경 보호와 자원 재활용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지속가능성(ESG)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난 장관은 5시부터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쌀값, 채솟값을 묻는 장관의 질문에 답하려면 실무자들은 새벽 4시에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그러고선 아침 7시에 회의했다. 모두 죽을 맛이었겠지만, 그게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했다. 고도성장기 경제 관료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경제 관료의 시대’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끈 고위 경제 관료 13명이 주인공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였다.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었다. 믿을 건 사람뿐이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일제시대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에서 일한 인재들이 있었다. 그들이 경제 관료가 돼 나라 경제를 책임졌다. 공무원들의 새벽잠을 깨운 사람은 장기영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다. 1960년대 중반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수출 주도 공업화를 이끌었다. 그는 물가를 잡겠다며 정육업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호통치고 다방 주인에게까지 연락해 찻값을 내리라고 종용했다. 그런 장기영 밑에서 차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