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세계서 버티는 힘, 상상력과 공감
“어째서 저런 비극이 나만 피해가는 걸까. 왜 저 사람들에게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라바》로 일본 나오키상을 받은 작가 니시 가나코의 신작 장편소설 《i(아이)》(은행나무)의 주인공 ‘와일드 소다 아이’가 시작부터 끝까지 읊조리는 혼잣말이다.

비극이 나에게 닥치는 것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참혹한 일이 나만 비켜간 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이 소녀는 시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일본인 부부에게 입양돼 뉴욕과 도쿄에서 자란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아이가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살아남아 버렸네”라는 자책이었다. 2004년 러시아 체첸 반군 테러, 2005년 수마트라섬 대지진, 2006년 이집트 페리 침몰 등 참혹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아이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아이가 자책하는 이유는 그가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지성을 가졌기 때문이지만, 출생 배경도 작용한다. 아이는 자신이 양부모로부터 뽑혀 오지 않았다면 지금 어쩌면 죽었을, 혹은 아직도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을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괴로워한다.

2011년 일본에서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이는 친구 미나와 양부모의 설득을 뒤로하고 고집스레 도쿄에 남는다. ‘방관자’에서 벗어나 ‘고통받는 자’의 처지에서 비극에 대해 직접 말할 권리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발버둥치지만, 결혼 뒤 유산하게 되면서 아이는 또다시 무너진다.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 질문은 ‘잔혹한 현실에 대항할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다. 아이는 친구 미나의 편지와 남편의 따뜻한 말을 통해 문득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답을 얻는다.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만 괴로움을 얘기해야 하는 건 아냐. (…)그게 어떤 건지 상상밖에 할 수 없지만, 게다가 실제로 힘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상상한다는 것은 마음을, 생각을 보내는 일이야.”

상상력을 발휘한 공감, 공감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힘만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잔혹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