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거스를 수 없는 고용 종말… 창조적 '일'에 몰두하라
“향후 20년 안에 임금제 고용 형태의 일자리는 사라진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신간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에서 거스를 수 없는 자동화 추세 속에 고용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고찰한다. 그는 AI 등장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 어떻든 간에 자동화 시대는 이미 시작됐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고용의 종말’을 계기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널리스트인 아리엘 키루와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스티글레르는 ‘고용’과 ‘일’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가 정의하는 고용은 ‘노동자가 봉급을 받는 활동’이다. 반면 일은 보수를 받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앎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으로 규정한다. 정원을 가꿔 식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 무언가를 발명하고 창조하는 것,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 모두 일이다. 그는 “고용은 표준화나 기계적인 반복, 동기 박탈만을 양산하며 실업의 위협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용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한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스티글레르는 “고용의 죽음은 오히려 희소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세기 중반 영국의 러다이트운동처럼 임금제 고용을 수호하기 위해 자동기계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대신 ‘창조의 능력’을 기르라고 주문한다. 스티글레르는 이를 ‘비자동화’라고 부른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는 대신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주자가 새로운 연주법을 통해 예술가로 거듭나고, 기술자가 창조적 발명으로 장인이 되는 것과 같다. 스티글레르는 인류가 생물학적 생존보다는 정신적 실존, 실용적 활동보다는 여가·향유·명상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때 사회가 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한 방식은 프랑스의 예술인실업급여제도인 엥테르미탕을 모델로 한 ‘기여소득’이다. 고용당하는 대신 일할 수 있고, 일을 통해 ‘앎’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최근 북유럽 국가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오히려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하게끔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