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의 신인작가 육성센터 ‘오펜’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CGV에서 신인 영화작가들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영상으로 제작해 350여 명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소개했다.  /CJ E&M 제공
CJ E&M의 신인작가 육성센터 ‘오펜’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CGV에서 신인 영화작가들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영상으로 제작해 350여 명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소개했다. /CJ E&M 제공
10여 분 정도의 영상 7편이 스크린에 연이어 펼쳐졌다. 짧지만 기존 영화관에서 보던 작품과는 사뭇 달랐다. 영화 예고편 같기도 하고, TV 프로그램의 영화 소개 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용도 독특했다. 일요일이 갑자기 사라진 직장인 남성의 얘기를 다룬 ‘일요일을 잃어버린 남자’, 구한말 출세를 꿈꾸며 몸부림치는 두 남녀의 욕망과 사랑을 다룬 ‘출세’, 화재 현장에서 아들을 죽인 자를 구조해야 하는 소방대원을 그린 ‘48 비착’ 등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구성에 객석에선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신인 작가들의 시나리오 피칭(자신이 쓴 시나리오의 주요 내용과 콘셉트를 짧게 소개) 현장이다. ‘오피치’란 타이틀로 열린 이 행사는 CJ E&M의 신인작가 육성센터 ‘오펜’이 주최하고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 주관했다. 지난해 개관한 오펜에서 교육받고 시나리오를 쓴 신인 영화 작가들이 관계자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영화 제작자, 투자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영상을 보고 메모도 틈틈이 했다. CJ E&M 관계자는 “처음엔 200여 명을 예상했는데 350여 명이 몰렸다”며 “피칭 이후에도 상세 스토리를 묻고 제작 여부를 논의하는 비즈니스 미팅이 총 84건 이뤄졌다”고 말했다.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 영상으로 피칭을 한 것은 국내 최초다. 해외에서도 드문 일이다. 박상아 K필름 기획프로듀서는 “영상화 자체가 예산이 들어가고 스태프도 꾸려야 하기 때문에 피칭 단계에서 영상이 만들어지긴 힘들다”며 “작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펜은 지난해 4월 상암동에 마련된 신인작가들의 집필 공간이다. CJ E&M은 이곳에 2020년까지 13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영화, 드라마 작가 총 35명을 1기로 선발했으며 곧 2기를 모집한다.

기존 아카데미와 가장 차별화한 점은 작가들의 실질적인 데뷔를 돕는 것이다. 신인작가가 개인적으로 하기 힘든 교도소, 경찰서, 소방서 등 현장 취재를 직접 연결해준다. 영화와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작품도 꾸준히 소개한다.

오펜은 이번 행사를 위해 영상 제작비를 전액 지원했다. 작가들에게 멘토 겸 영상을 만들 감독도 연결해줬다. 두 달이 넘게 함께 고민하고 작업해 작가가 담고 싶은 스토리를 가장 잘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출세’를 집필한 박상혁 작가는 “생각이 맞는 감독을 직접 선택해 함께 시나리오를 시각화할 수 있어 좋았다”며 “영화 작가들은 보통 감독도 함께하고 싶어하는데 이번 영상화 작업으로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피칭 영상은 이후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여러 번 피칭 행사를 열어 더 많은 관계자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다수의 기관과 협의하고 있다.

오펜은 1기 드라마 작가들이 쓴 단막극 10편을 모아 ‘드라마 스테이지’란 타이틀로 tvN에서 소개했다. 1기로서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심화 과정을 두고 지속적으로 작가 교육을 받도록 지원한다. 본업 작가가 될 때까지 돕는 것이다. 남궁종 CJ E&M CSV경영팀 부장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저작물에 대한 권리도 작가에게 주고 최대한 이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좋은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