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낱말이 가진 미묘한 힘… 시적 감수성과 위트로 풀어내
‘눈, 코, 입 따위가 있는 얼굴의 바닥.’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낯’이라는 단어의 의미다. 김소연 시인(사진)의 신간 《한 글자 사전》(마음산책)의 뜻풀이는 조금 다르다. ‘얼굴이라는 말보다 더 민낯을 지칭하는 말. 감정이 담긴 얼굴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풀었다.

김 시인은 《한 글자 사전》에서 ‘감’에서 출발해 ‘힝’까지 310개에 이르는 한 글자 낱말들을 깊게 들여다본 뒤 그만의 시적 언어로 정의한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해당 글자를 화두로 삼은 산문적 정의다.

저자는 단어가 가진 미묘한 힘과 비슷한 단어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곁’이라는 단어를 두고 김 시인은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단어”라며 “동료와 나는 서로 옆을 내어주는 것에 가깝고, 친구와 나는 곁을 내어준다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누군가가 내 친구인지를 가늠해보려면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인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된다는 것이다.

한 글자 단어를 통해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는 글자 ‘여’를 풀이한 난에 “여자들은 환영받지 못한 여동생으로 태어나 여고생이 되었다가 여대생이 되고, 여급에서 여사원에서 여사장이, 여가수나 여의사나 여교사나 여교수나 여류 화가나 여류 작가로 산다. 남자들이 환영받는 남동생으로 태어나 고교생이 되었다가 대학생이 되고, 사원에서 사장이, 가수나 의사나 교사나 교수나 화가나 작가로 사는 동안에”라고 적으며 아직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꼬집는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저자만의 위트와 촌철살인에 웃음이 난다. ‘귀’는 ‘토론할 때는 닫혀 있다가 칭찬할 때는 잘 열리는 우리들의 신체 기관’이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보다 공치사에만 급급해하는 조직 사회를 꼬집은 것이다. 그만의 시적 감수성이 듬뿍 묻어난 단어도 있다. 김 시인은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동안 모두가 분주한 ‘낮’에 그림자를 떠올렸다. “‘낮’은 그림자를 선물받는 시간들”이며 “그림자와 헤어지기 싫어한 누군가가 불빛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