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복원된 현재의 현판(아래)과 실험용 현판. 실험용에는 검은색 바탕에 금칠, 금박, 흰색(왼쪽부터)으로 ‘光’ 자가 쓰여 있다.  /연합뉴스
2010년 복원된 현재의 현판(아래)과 실험용 현판. 실험용에는 검은색 바탕에 금칠, 금박, 흰색(왼쪽부터)으로 ‘光’ 자가 쓰여 있다. /연합뉴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은 원래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은 조선 고종 때인 1860년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제작한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 1년간 과학적으로 분석·연구한 결과 이렇게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라 광화문 현판은 내년 상반기 현재의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에서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다시 제작돼 걸린다.

옛 광화문 현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흑백사진 세 가지다. 1893년께 찍은 것으로 보이는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과 일본 도쿄대 소장 유리건판 사진(1902년 촬영), 1916년에 찍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이다. 이들 사진의 광화문 현판을 보면 서체는 같은데 색상이 다르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은 바탕색이 어둡고 글자색이 밝은 데 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대 소장 사진은 바탕색보다 글자가 어둡다. 현판의 원래 색상에 대한 논란이 제기돼 온 이유다.

2010년 광화문이 복원된 이후에도 현판의 색상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도쿄대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리건판 사진을 근거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현판을 제작해 걸었다. 그러나 2016년 2월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재점화됐다. 이 사진에서는 바탕색보다 글자색이 밝아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나 금색으로 글씨를 썼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실험용 현판을 만들어 옛 방식으로 제작한 유리건판으로 사진을 촬영한 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바탕색과 글자색을 확인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실험용 현판은 현존 현판에 나타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제작했다. 흰색, 검은색, 검은색 옻칠, 코발트색 등 네 가지 색 바탕에 흰색, 검은색, 금색, 금박, 코발트색 등 다섯 가지 글자색을 넣은 현판 4개를 제작하고, 이와 별도로 단청이 퇴색한 것처럼 처리한 현판 4개를 더 만들었다.

이들 실험용 현판을 원래 자리에 걸어놓고 사진을 찍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옛 유리건판 사진에 나타난 그림자의 형태 등을 토대로 촬영 시기와 시간대를 분석해 당시와 가장 비슷한 시점을 예측해 촬영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은 1916년 8월 오후 2시께,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은 1892년 12월 또는 1893년 2월 낮 12시30분 이후 촬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촬영 위치와 현판으로부터의 거리도 최대한 당시와 비슷하도록 고려했다.

광화문 주변 바닥이 예전과 달라 현판에 비치는 반사광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문화재청은 이런 환경적 요소를 보완하기 위해 미니어처를 대상으로 한 촬영실험도 했다. 이후 유리건판 사진 자료와 대조하고 고건축, 역사, 단청, 서예, 사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한 자문회의를 거쳐 현판의 바탕색과 글자색을 최종 확정했다는 설명이다.

문화재청은 실험용 현판에 전통단청과 현대단청을 입혀 오는 10월까지 살펴본 뒤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전통단청은 아교와 전통안료로, 현대단청은 아크릴에멀전 접착제와 화학안료로 채색한다. 그 결과를 반영해 내년 상반기에 새 현판을 만들어 걸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경복궁 중앙에 일렬로 배치된 광화문, 흥례문(興禮門), 근정문(勤政門)과 중심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에는 모두 검은색 바탕에 금색(혹은 금박) 글씨의 현판이 걸린다.

광화문 현판은 6·25전쟁 중에 훼손됐던 것을 1968년 복원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친필이 논란이 돼 2010년 현재의 현판으로 교체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