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의 풍모가 느껴지는 푸둥의 스지톈차오 공중 보행로
미래 도시의 풍모가 느껴지는 푸둥의 스지톈차오 공중 보행로
중국 상하이에 또 갔다. 노란 공유 자전거로 미술관을 순회하고, 스쿠먼(石庫門) 농탕 골목을 헤맸다. 아침엔 간이식당에서 뜨끈한 훈툰탕을 후루룩 들이켜고, 저녁엔 동방명주가 보이는 루프톱바에서 달콤한 칵테일에 취했다. 하루 동안의 상하이 여행은 19세기 옛 골목에서 시작돼 낯선 미래 도시로 이어졌다.

상하이=글·사진 도선미 여행작가 dosunmi@gmail.com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변화무쌍한 도시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상하이 소식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1년 전 가이드북 취재를 위해 설정해둔 뉴스 피드가 지금도 배달되고 있어서다. 그 사이 크루아상이 맛있던 인기 빵집은 썩은 밀가루 파동으로 문을 닫았고, 복숭아 맥주 맛이 황홀했던 수제 맥줏집은 재개발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매력적인 카페와 크고 작은 미술관, 새로운 호텔은 날마다 부지런히 생겨난다. 역시 상하이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도시다.
와이탄과 푸동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상하이 인디고호텔 31층 차르 바
와이탄과 푸동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상하이 인디고호텔 31층 차르 바
400페이지가 넘는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동안 이 변화무쌍함은 나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고, 열정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상하이는 한 번만 가봐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팍한 도시지만 그 덕에 매번 질리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 가이드북 저자로선 다행한 일이다. 상하이에 갈 때마다 취재 일정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매번 빼놓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스쿠먼 옛 골목을 거닐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루프톱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야경을 즐기는 것. 지금 당장 상하이에 가서 온전히 하루를 보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딱 이 세 가지에만 몰두하고 싶다. 말하자면 이것은 가장 상하이다운 여행법이다.

서민의 애환이 깃든 100년 역사 옛 골목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허름한 식당에서 중국식 아침 식사를 즐겨 큰 화제를 모았다. 문 대통령이 몸소 보여준 대로 중국 사람은 아침으로 갓 튀겨낸 요우타오(길쭉하게 튀긴 밀가루빵)에 고소한 더우장(콩물)을 사먹는다. 뜨끈한 훈툰탕(만둣국)이나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만터우(찐빵), 중국식 토스트인 지엔빙 역시 단골 메뉴다. 일찍이 문을 연 골목 식당에서 아침을 사 먹는 풍경은 상하이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다. 큰길을 벗어난 뒷골목에는 여전히 서민들의 오래된 일상이 살아 숨쉰다.
 스쿠먼 농탕 골목 노천식당의 국수
스쿠먼 농탕 골목 노천식당의 국수
위위안 정원에서 가까운 ‘닝허루(Ninghe Road)’, 지하철 난징시루역 뒷골목 ‘장위안(Zhang Yuan)’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서민 골목이다. 이런 좁은 골목을 베이징에서는 후퉁이라고 하지만 상하이에서는 ‘농탕(弄堂)’이라고 한다. 아기자기한 숍과 미로 같은 골목으로 유명한 ‘텐즈팡’은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농탕이고, 세련된 바와 카페가 많은 신천지도 낙후한 농탕을 개조해 새로 만든 곳이다.

오래된 농탕 골목에 가면 스쿠먼이라는 상하이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돌로 문틀을 만든 집이라는 뜻인데, 유럽식 연립주택과 중국식 사합원이 절묘하게 뒤섞여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정원을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베이징식 쓰허위안(四合院)구조지만 3층 건물을 다닥다닥 이어 붙여 토지를 아끼는 방식은 유럽의 연립주택을 본떴다. 서양 고전 건축에서 흔히 보이는 장식 기둥과 아치 형태의 상인방, 식물 줄기를 표현한 아르누보 장식이 당시 유럽 건축의 영향을 더욱 여실하게 보여준다. 스쿠먼은 영국, 미국, 프랑스가 상하이를 분할해 점유하던 조계 시대, 즉 1860년대부터 1940대까지 도시 전역에 광범위하게 지어졌다.

스쿠먼 집들은 매우 개방적이다. 앞문과 후문이 있어 골목과 골목이 통하고, 한 동 한 동이 공중 아케이드로 연결된다. 스쿠먼 집 한 채에는 원래 단일한 대가족이 살았다. 그들 대부분은 장쑤성, 저장성 일대에서 온 부유한 상인, 지주였는데 마오쩌둥 집권 후 온 가족이 방 한칸으로 쫓겨났다. 자본가를 낮은 계급으로 분류하고, 토지와 주택은 모두 국유화했기 때문이다. 10여 세대가 살며 화장실과 부엌, 욕실, 옥상을 함께 쓰는 스쿠먼 특유의 공유 경제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2000년대에 새로 지은 스쿠먼 농탕(골목) 신천지
2000년대에 새로 지은 스쿠먼 농탕(골목) 신천지
스쿠먼은 20세기 상하이의 영혼과도 같은 곳이다. 중장년층이 된 상하이 서민에게는 삶의 애환이 깃든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스쿠먼에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 아파트의 쾌적함과 익명성을 찾아 떠난 젊은 세대에게 스쿠먼은 이미 신기한 근대 문화유산이 돼버린 건지도 모른다.

노란 자전거 타고 떠나는 황푸강 미술관 순례

요즘 상하이에서 새롭게 부상 중인 미술 허브는 ‘웨스트 번드(West Bund)’다. 와이탄을 영어로 번드(Bund)라고 하는데 그 서쪽, 즉 황푸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그렇게 불린다. 와이탄에서는 차로 20분 떨어진 거리다.

웨스트 번드는 아치 모양의 아름다운 다리 루푸대교를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일대는 과거 100년 이상 상하이의 중추적인 공장지대로 기능해왔다. 원래 시멘트 공장, 석탄 부두, 화물 기차역과 공항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건물이 모두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옛 석탄 운반 다리로 건축물을 살린 롱뮤지엄(Long Museum), 공항 격납고를 개조해 드넓은 실내 전시실을 갖춘 위주미술관(YUZ Museum), 젊은 사진가들의 재기발랄한 작업을 만나는 상하이 포토그래피센터(Shanghai Center of Photography), 항공기를 제조하던 공장을 박람회장으로 만든 웨스트번드 아트센터(West Bund Art Center)까지 황푸강을 따라 크고 작은 미술관이 5㎞ 남짓 드문드문 이어진다.

오래된 공장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건 중국에서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무기공장이었던 798예술특구, 방직공장이었던 M50 창의원은 이미 베이징, 상하이를 대표하는 예술촌이 됐다. 798이나 M50에서는 산업화 시대의 삭막한 분위기가 얼마간 느껴졌는데 반해 웨스트 번드에는 그런 그늘이 없었다. 아마 강을 향해 탁 트인 전망 덕분인 듯싶다. 미술관에서 나오면 잘 정비된 강변 공원과 산책로가 이어지니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니기도 좋다.
중국 전역에서 돌풍을 일으킨 공유 자전거 오포
중국 전역에서 돌풍을 일으킨 공유 자전거 오포
해외에서도 유명한 롱뮤지엄, 위주 미술관이 모두 전시 준비 중이라 아쉬웠지만 노란색 공유 자전거 오포(ofo)로 웨스트 번드 미술관을 순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중국 대도시에선 몇 해 전부터 공유 자전거가 열풍이다. 특정 장소에서 대여하거나 반납할 필요 없이 눈에 띄는 대로 빌리고 아무 곳에나 세워두면 끝이다. 중국의 과감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을 몸소 체험하는 의미에서라도 여행 중 꼭 한번 타 보자.

노을 보며 칵테일 마시고, 그녀를 떠올리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와이탄과 푸둥 루자쭈이는 그 자체로 상하이의 상징이다. 20세기 초의 유럽풍 건축물이 길게 늘어선 와이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외계 행성을 보는 듯한 푸둥 루자쭈이. 상반되는 두 가지의 공존과 중첩이야말로 상하이의 진짜 얼굴이다. 개인적으로는 와이탄의 야경보다 루자쭈이의 야경을 더 좋아한다. 유럽의 고전 건축을 모방하려 애쓴 와이탄 건물들은 다분히 기시감이 들지만 루자쭈이는 완전히 새롭다. 한참 보고 있으면 여기가 상하이인지 우주정거장인지 헷갈린다.

툭 튀어나온 입모양을 뜻하는 지명처럼 루자쭈이의 지형은 강쪽으로 돌출한 형태라 멀리서 보면 꼭 고립된 섬 같다. 그 위에 세심하게 꽂힌 마천루들은 낮밤의 표정이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태양빛을 강렬하게 반사하며 차갑게 반짝이고, 밤이면 저마다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춤을 춘다. 무엇보다 대체 세계 어디에 동방명주같이 사랑스러운 건물이 또 있단 말인가. 동방명주가 없다면 푸둥의 스카이라인도 여의도만 못할 것이다.

해질녘에는 루프톱바에 올라가 칵테일 한잔에 야경을 음미해 보자. 와이탄 남쪽 인디고호텔 31층의 차르바(Char Bar), 와이탄 북쪽 하얏트 온더 번드호텔 32층의 뷰바(Vue Bar)는 와이탄과 푸둥 루자쭈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넓은 시야 덕택에 가장 포토제닉한 곳으로 꼽힌다.

와이탄 중심에 위치한 곳을 찾는다면 펑키한 분위기의 팝바(Pop Bar), 푸둥 루자쭈이에서는 58층 고층에 있는 플레어루프톱바(Flair Rooftop Bar)을 추천한다. 플레어루프톱은 특히 칵테일이 맛있기로 정평이 났다. 보드카 베이스에 체리 시럽, 복숭아, 오렌지주스를 넣고 잔 위에 솜사탕을 구름처럼 올린 ‘플레어 인더 클라우드’는 상하이에서 먹어본 최고의 칵테일이었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그녀(Her)’를 좋아한다면 밤 시간에 루자쭈이를 걸어보자. 동방명주와 슈퍼브랜드 쇼핑몰, IFC몰을 연결하며 길게 이어지는 스지텐차오 육교는 최고의 산책로다. 이 공중 산책로는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매일 출퇴근하며 걷는 길이기도 하다. 테오도르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지적인 유머를 지닌 컴퓨터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이버틱한 마천루로 둘러싸인 스지텐차오 육교를 걷다보면 영화 분위기가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정말로 가능할까? 모르긴 해도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에 상하이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상하이 여행정보

인천, 김해, 제주, 대구, 청주, 무안, 양양에서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까지 하루 최대 38편의 항공편이 운항된다. 김포~훙차오 노선은 하루 4편 운항한다.

필자가 쓴 《리얼 상하이》(한빛라이프, 2017)는 가장 최근에 출간된 상하이 여행 가이드북이다. 테마별, 지역별로 나누어 관광지와 맛집, 숍까지 구석구석 소개한다. 현지 이벤트로 매년 음력 1월1일부터 15일까지 위위안(예원) 상점가에서 화려한 등불 축제가 열린다. 마지막 3일을 제외하고 무료다. 스쿠먼 가옥 내부는 개인 거주 공간이기 때문에 관람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주민의 허락을 얻어 잠깐 둘러볼 순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신천지 번화가에 있는 스쿠먼 우리샹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1930년대 상하이 중산층 가정의 생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으로 총 3층 구조, 7개의 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