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일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18~20일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마술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콘셉트에 묶여 있고 트릭에 치중할 수밖에 없죠. 대중공연을 할 때마다 그게 참 아쉬웠습니다.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마술적 표현을 하는 예술’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을 ‘일루션’이라고 부릅니다.”

손에 쥔 카드를 순식간에 없애거나 텅 빈 주머니에서 흰 비둘기를 꺼내던 ‘마술사’ 이은결에 대한 기억은 잠시 접어둬야 할 것 같다. 이은결은 18~20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푼크툼(punctum)’이란 공연을 한다. ‘마술’이 아니라 ‘퍼포밍 일루션’이라는 장르를 내걸고, ‘마술사 이은결’이 아니라 ‘일루셔니스트 EG’로 관객과 만난다.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두산 아트랩’ 선정작이다.

16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시각적 트릭 퍼포먼스에 치중돼 있는 마술의 패러다임을 깨고, 관객이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결은 1996년 마술을 시작해 데뷔 20주년을 넘긴 프로 마술사다. 미국과 일본 스웨덴 등에서 열린 국제마술대회에서 1등상을 거머쥐고 2011년엔 국제마술사협회로부터 ‘마술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멀린 어워드를 수상했다. 하지만 예술적 표현에 대한 갈망에 ‘마술’이라는 틀을 깨고 나왔다. 흥행몰이가 중요한 대중공연과 별도로 작가만의 세계관과 독창성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작가주의 작품 실험에 몰두했다. 마술과 마임, 그림자극, 모션그래픽, 마리오네트 등을 넘나들며 이미지나 인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물은 ‘일루션(illusion)’이라는 새 장르로 나타났다. 마술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극대화해 만든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마술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그는 “마술은 일루션을 구성하는 부분일 뿐”이라며 “마술이 시각적 이미지의 운동이라면 일루션은 공연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 각자가 하는 사유의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신작 ‘푼크툼’은 ‘찌름(punctionem)’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따왔다. 작가가 삶의 어느 시점에 자신을 파고든 이미지와 인상을 표현한 단편들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했다. 그는 “각 단편은 버려짐, 죽음 등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는데 전체적으로는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라며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어느 날 문득 섬뜩해지거나 마음이 아리는 지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마임(무언극)적 요소와 극적 요소를 포함한다. 시적인 표현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며 이미지로 시를 만드는 ‘포에틱(poetic) 일루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소개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선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여백 속에서 관객 각자가 하는 사유와 경험 자체가 멋진 일루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