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귀환.

2018년을 맞으며 떠오른 말입니다. 한 달에 하나씩 동네 책방이 생긴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유명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서점을 잇따라 냈습니다. 교보문고에는 책 읽는 사람들로 빈 의자를 찾기 힘듭니다. 왜 책이 돌아왔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죠. 그중 하나가 불확실성 때문일 것입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등은 미래를 예측하기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그중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오브제’가 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개 낀 미래를 준비할 정신적 자산. 이 실마리를 상아탑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총장들로부터 몇 권의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2018년을 한 권의 책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편집자주>


대학총장들이 새해에 읽어볼 만하다고 권한 책에는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에서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이념적 사회적 갈등이 깊어가는 한국 사회를 성찰하고 한발 더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책, 고난에 처한 청년들에게 좌표가 될 만한 책도 추천했다.

불확실성의 시대… “오늘의 불안을 직시하고 미래를 전망해야”

대학 총장 8인에게 물었습니다… 2018년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와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택했다. 현대인의 불안을 직시하고 미래를 전망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사회적,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호모데우스》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21세기 중반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다. 염 총장은 “대학생이 갖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하려고 이 책들을 읽게 됐다”며 “대량생산체제 산업사회 패러다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도 《호모데우스》를 읽어볼 만한 책으로 꼽았다. 김 총장은 모종린 교수의 《골목길 자본론》을 함께 추천하며 “미래의 인간뿐 아니라 미래의 도시, 새로운 자본주의 도시 발전모델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블루오션 전략》의 다양한 현장 적용 사례 등을 담아 13년 만에 내놓은 책 《블루오션 시프트》도 권했다.

‘광장’을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책”

지난해 한국 사회는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을 지나왔다. 국민들이 100여 일간 광장으로 모이면서 세대 갈등, 이념 대결, 지역주의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도 함께 광장에 섰다. 총장들은 지난 상처를 돌아보고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기 위해 이념 갈등, 광장과 국가의 역할 등을 다룬 책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지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때 고민해야 할 키워드로 ‘갈등’을 꼽았다. 유 총장은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자기 땅의 이방인들》을 추천했다. 유 총장은 “이념 갈등은 우리의 시력과 청력을 상실시킨다”며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수·진보 간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시력과 청력 테스트를 미리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저자가 진보적 성향이 강한 지역과 보수적 성향이 강한 지역을 오가며 쓴 책이다. 부제는 ‘미국 우파는 무엇에 분노하고 어째서 혐오하는가’다. 공감과 혐오의 기원, 투표의 원리를 고찰한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최인훈의 《광장》을 새해를 맞아 읽어볼 책으로 추천했다. 추천 이유에 대해 “1960년 출판된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라며 “현재 우리 사회에도 성찰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헌법학자로서 저서 《헌법과 생활법치》를 추천하기도 했다. 성 총장은 “촛불혁명은 생활법치로 완성돼야 한다”며 “민주시민이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제 역할을 다하려면 헌법 정신을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박 총장이 추천한 잉게 솔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나치 정권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친 남매를 그린 소설이다. 한스 숄, 조피 숄 남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박 총장은 “두 사람의 저항운동은 정의를 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준다”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고난 앞 청년들에게… “좌절하기 전 자신의 잠재력 들여다보길”

총장들은 청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따로 꼽기도 했다.

대학 총장 8인에게 물었습니다… 2018년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김인철 한국외국어대 총장은 고등학생 때 읽었다는 노먼 빈센트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추천했다. 이 책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사소한 실천을 이끌어내 결국 성공의 토대가 된다는 내용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낄 때마다 이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고 했다. 김 총장은 “오늘날 청년들은 수많은 고난을 마주하곤 한다”며 “고난에 압도당하는 게 아니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말했다.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던》과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Grit)》을 청년들에게 추천했다. 정 총장은 “《리바이어던》은 400여 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며 “국가란 무엇이고 그 구성원으로서 국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그릿》을 추천하면서 “성공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건 ‘재능’이 아니라 ‘투지와 용기’라고 말하는 책”이라며 “고민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잠재돼 있는 ‘그릿’을 일깨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창업가 선배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이영무 한양대 총장은 신동우 나노 최고경영자(CEO)의 《청년에게 답하다》와 신미남 두산·퓨얼셀BU 사장의 《여자의 미래》를 2018년 청년들에게 추천할 책으로 뽑았다. 이 총장은 특히 《여자의 미래》를 청년들에게 추천하며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계를 겪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 책은 여성 리더에 대한 역할모델을 제시하는 동시에 청년들에게 현실의 벽을 현명하게 뛰어넘는 방법을 들려준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