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미디어 뉴스룸-BUSINESS] 화장품 판도 바꾸는 새 키워드 '성분'
화장품업계가 ‘성분’ 전쟁에 나섰다. 음식을 먹을 때 원산지나 재료의 안전성을 따지듯 화장품을 고를 때도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과장된 마케팅이나 닮고 싶은 연예인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화장품 성분 정보 ‘앱’ 인기

화장품 성분 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는 전부터 존재했다.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의 이력을 명확히 알고 난 뒤에야 구매하는 ‘체크슈머(checksumer)’가 대표적이다.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살충제 계란 등으로 제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 화학제품을 거부하는 ‘노케미족’도 생겨났다.

소비자들이 화장품 성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3년 화장품을 분석해 주는 앱(응용프로그램)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에서 시작됐다. 화해를 만든 이웅 대표는 ‘화장품’에 초점을 맞춰 창업을 준비하던 중 성분을 둘러싼 정보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품 전 성분 분석 아이템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어려운 화학 용어만 줄줄이 쓰여 있는 화장품 용기를 보며 어떤 성분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지, 어떤 성분이 피부에 유해한지 알기 힘들었다. 제품을 구매할 때 사실상 브랜드 이미지나 블로거들의 리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화해는 미국 환경보호그룹(EWG: Environmental Working Group)·대한피부과의사회·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20가지 주의 성분과 알레르기 주의 성분, 성분별 안전도 등급, 기능성 성분 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결과 누적 다운로드 550만 건을 돌파했다.

화장법이 아니라 성분만 분석해 주는 뷰티 유튜버도 등장했다. 패션지 뷰티에디터 출신인 ‘디렉터 파이(피현정)’는 성분의 단점과 효능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전문적 견해로 피부 타입별 추천 아이템을 제시한다. 성분에 대한 전문적인 리뷰로 구독자 29만 명, 동영상 총 재생 건수는 2000만 회를 넘어섰다.

◆특별 마케팅 없이도 성장하는 업체 등장

화해나 디렉터 파이에게 성분으로 좋은 평가를 얻은 제품은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백화점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해외 명품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아토피나 민감성 피부를 공략한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에도 기회가 열렸다.

리얼베리어, 아토팜, 제로이드 등의 더마코스메틱(화장품+의약품) 브랜드를 보유한 네오팜은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8%, 18.8% 증가한 115억원, 25억원을 기록했다. 네오팜 브랜드는 줄곧 화해 랭킹 상위권을 유지했고 디렉터 파이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아로마테라피를 테마로 한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화해를 통해 천연 성분을 사용했다는 점과 사용 후기가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특별한 광고도 없었고 유통 경로도 좁았지만 EWG로부터 안전한 화장품 챔피언에 선정될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았다.

화장품업계는 이런 변화에 따라 불필요한 위험 성분을 빼고 천연 재료와 의약 성분으로 효능을 높인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융합연구정책센터에 따르면 더마코스메틱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40조원에 달한다. 2017년 5000억원인 국내시장은 2020년 1조2000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기업도 이전에는 천연 원료에 콘셉트를 입혀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컸다면 최근에는 임상 시험이나 효능·효과의 입증을 토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한경비즈니스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