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개

레이먼드 게이타 지음 /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92쪽 / 1만4000원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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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메리’라는 이름의 수컷 잡종견이 우리 집에 온 때였다. 녀석은 무척 영리했다. 골목에서 대문을 향해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만 듣고도 식구인지 아닌지 알았다. 작지 않은 덩치에도 애교가 넘쳐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한데 큰 문제가 생겼다. 발정기 때 동네에 ‘여친’이 생기면서다. 틈만 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녀석을 묶어두자 단식으로 맞섰다. 중증 사랑병에 빠져 날로 야위어가는 녀석을 풀어줄 것인가, 계속 묶어둘 것인가. 결국 녀석은 다른 동네로 보내졌고, 온 가족이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개 한 마리가 뭐라고….

호주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레이먼드 게이타 멜버른대 교수에게는 이보다 더한 경험이 많다. 그가 기르던 저먼셰퍼드 암컷 ‘집시’는 잠시 목줄을 놓은 사이 인파 속을 달리다 술취한 거구의 남자와 부딪혀 깔려버렸다. 중상을 입은 집시의 수술비와 병원비는 어느새 2000달러를 넘었다. 살림살이가 빠듯하던 터라 주말마다 아내와 시장 가판대에서 셔츠 한 장 팔면 2~3달러 남는 옷 장사를 하면서 병원비를 댔다. 식구들을 건사해야 할 대학교수가 개 한 마리를 위해 일하게 된 것. 그렇게 살려낸 집시가 자기보다 더 젊고 힘센 다른 셰퍼드 두 마리와 싸웠을 땐 아내가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꼬리를 잡아당기면서 말렸다. 자칫 목숨이 위험했을 행동이었다. 그때 게이타 교수는 자문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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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개》에서 게이타 교수는 개, 고양이, 새 같은 주변의 동물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책의 부제가 ‘곁에 있는 동물들과 함께 철학하기’다. 저자는 곁에 있는 동물과 맺는 일상적인 관계에서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개, 고양이, 앵무새 등과 함께 살면서 각별한 관계를 형성한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여서 진정성이 두드러진다. 시골의 황폐한 농가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따뜻함과 위안을 안겨준 개 ‘올로프’에 얽힌 추억과 올로프가 사고로 심하게 다치자 주변 사람의 안락사 권유를 마다하고 1년 넘게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아버지의 일화, 집시를 약올리다 그의 사나운 공격에 치명상을 입은 길고양이 ‘토스카’의 최후 등 여러 이야기가 읽는 재미와 함께 간단치 않은 철학적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사고를 당한 집시가 극도의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를 때 저자는 ‘안락사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토스카가 치명상을 입었을 땐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삽으로 머리를 쳐서 한순간에 보내줘야겠다는 생각도 얼핏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를 두고두고 고민하게 했다. 과연 동물을 안락사시킬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가. 가족처럼 지내던 그 동물에게 만약 의식이나 생각이 있다면 자신을 죽이려는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저자는 “단지 집시가 개라는 사실에만 근거해 안락사를 정당화한다면 ‘종차별주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하고, 젠더를 구실로 성차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우리의 행동은 현저하게 일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물들과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매트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개는 무엇을 생각할까. 실수로 개의 발을 밟은 뒤 미안해서 안아주면 그게 사과의 의미라는 걸 개가 알까. 동물도 죽음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을까. 인간은 왜 어떤 동물에게는 그토록 애착을 가지면서도 다른 동물에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먹기까지 할까. 인간 각자가 저마다의 특성과 역사를 지닌 개체성이 동물에게도 있을까.

이처럼 다양한 질문을 통해 “동물과 인간은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것과 구별되는 것 모두를 발견하게 된다”며 비록 인간의 생명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동물과 식물의 생명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시대, 곁에 있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해볼 수 있는 책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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