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의 1927년작 ‘키스’.
마리 로랑생의 1927년작 ‘키스’.
그림의 색채는 파스텔톤이고 사물 간 경계선은 희미하다. 주요 소재는 여성과 동물이다. 아련한 번짐 같은 이런 모습은 꿈에서 본 풍경인 양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이 구축한 독자적인 화풍이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20세기 초중반으로 당시 서양 미술계는 굵은 필촉과 강렬한 색채 등을 추구하는 입체파와 야수파가 주류였다. 그러나 로랑생은 사조에 끌려다니지 않고 남과 다른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마르크 샤갈과 더불어 색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서양화가로 손꼽힌다.

로랑생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기획전 ‘색채의 황홀’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내년 3월11일까지 열린다. 지난 9일 개막한 이번 기획전은 로랑생의 개성있는 그림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그는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 일러스트 등의 작품도 다수 남겼다.

전시는 이 작품들을 시기별로 여섯 부분으로 나눠 보여준다. 그의 초기작에는 선을 굵게 그리고 원색을 사용하는 등 야수파 영향을 받은 작품이 제법 있다. 그리는 대상도 정물과 인물, 풍경이 골고루 섞여 있다. 그러나 1910년대 들어서며 다른 화가들과 확연하게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로랑생은 이때부터 몽환적인 느낌의 파스텔톤 색을 주로 사용했다. 낭만적이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분홍색과 파란색, 우수가 감도는 회색 등이다. 농담법(색채가 밝은 부분에서 어두운 부분으로 점차 변하는 것)을 사용한 듯 대상 간 경계선도 불분명하게 그렸다. 1927년작 ‘키스’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린 대상은 여성과 동물이 많아 동화나 신화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1921년작 ‘삼미신(三美神)’처럼 여신을 그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추구한 그림 세계는 ‘우아함’ ‘평온함’ 등의 단어로 요약된다. 그림의 질감은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지 않아 정돈되고 야무진 느낌을 준다.

로랑생은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지은 시 ‘미라보 다리’의 실제 인물이다. 그는 한때 아폴리네르와 연인 관계였다. 입체파 창시자로 불리는 조르주 브라크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는다.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 젊은 예술가 모임인 ‘세탁선(Bateau-Lavoir)’에서 활동했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주류 화가그룹’에 속했다. 전시회 입장료 어린이 8000원, 청소년 1만원, 성인 1만3000원. (02)396-3588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