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에 얹은 분홍빛 건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호이안의 ‘일본교’
교각에 얹은 분홍빛 건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호이안의 ‘일본교’
자유 여행은 여행자의 로망이다. 세상의 여행지는 셀 수 없이 많고, 여행 방법은 다양하다. 어떻게 여행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베트남 중부로 떠나보자. 최근 뜨고 있는 해변 휴양지 다낭,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후에와 호이안이 속한 이 지역은 망설임 없이 일상을 탈출할 만한 여행지다. 이 지역은 이미 잘 알려진 여행지지만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나힐스 5㎞ 로프웨이

다낭은 호찌민, 하노이에 이어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편리한 교통과 계획적인 개발로 상업이 번창해 짧은 역사에도 성장을 거듭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을 만큼 삶의 질도 높고 쾌적하면서 깨끗하다. 하지만 ‘살기 좋은’ 다낭이 ‘좋은 여행지’와 같은 표현일 수는 없다. 다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자에게는 낯선 곳이었다. 여행 콘텐츠마저 부족했다. 그런 다낭이 휴양 도시라는 낭만적인 색을 입고 거듭났다. 대형 브랜드 리조트가 속속 들어섰고, 다양한 어트렉션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낭 시내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바나힐스가 그 좋은 예다.
프랑스풍 건물이 즐비한 테마파크 ‘바나힐스’
프랑스풍 건물이 즐비한 테마파크 ‘바나힐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다 못한 프랑스인들은 평지보다 선선한 고산지대를 찾아 휴양지로 개발했다. 다낭에서는 바나산이 최적지였다.

바나산의 정상 언저리, 해발 1500m에 있는 테마파크가 바나힐스다. 이곳을 찾으면 공기부터 청량하다. 후텁지근한 다낭 시내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 또한 시원하다. 중세 프랑스풍을 모티브로 설계한 거리와 건물들의 위용도 예사롭지 않다. 내부에는 음식점, 기념품 가게, 실내 놀이공원 같은 시설이 들어서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더위에 지친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운영하는 리조트에서 묵어볼 만하다.
파노라믹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바나힐스 로프웨이’
파노라믹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바나힐스 로프웨이’
바나힐스를 얘기할 때 특히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로프웨이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명물로 5㎞에 달하는 거리를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태워 나른다. 긴 시간을 허공에 매달린 채 이동하는 기분이 아슬아슬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믹 뷰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유자적하며 지내고 싶다면 미케비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중 하나이자 베트남전쟁 중에는 미군 휴양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20㎞에 달하는 긴 백사장을 따라 늘어선 비치파라솔을 배경으로 서핑과 태닝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한낮의 미케비치는 분주하던 일상과는 달리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푸른 바다와 열대 야자수들이 흐느적거리고 구름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세상. 크림색 비치베드에 몸을 맡기면 달콤한 꿈들은 모두 현실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뜨거웠던 해가 힘을 잃기 시작하면 한가하던 백사장은 순식간에 역동적이 된다. 더위를 피해 숨죽이던 현지인들이 물놀이를 하기 위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에게 잠시 자리를 내줬던 미케비치는 본래의 주인을 만나 더 신이 난 듯 ‘과하게’ 활기를 띤다. 이것이 미케비치의 매력이다. 지나치게 서구화되지도 현지화하지도 않은, 휴양에 최적화된 고급 리조트들 사이로 현지인과 이방인이 공존한다.

볼 것, 찍을 것, 느낄 것 많은 왕조의 도시

후에는 베트남 중부에 있는 고도(古都)다. 마지막 왕가인 응우옌 왕조가 143년간(1802~1945) 이곳에서 베트남을 통치했다. 과거 한 국가의 수도가 상징하는 의미는 단순히 정치, 경제적 중심지를 넘어선다. 수도는 예술과 문화, 건축, 교육, 거주자들의 삶의 형태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볼 것, 찍을 것, 느낄 것’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뜻이다.
바로크·중국·베트남식이 혼합된 ‘카이딘 왕릉’
바로크·중국·베트남식이 혼합된 ‘카이딘 왕릉’
후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거의 영화를 반영하는 유적과 문화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응우옌 왕조의 역대 왕들이 잠들어 있는 왕릉군(群)과 왕궁 유적은 ‘베트남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만큼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자랑한다.
역대 왕실 묘역 가운데 가장 기품있는 ‘민망 왕릉’
역대 왕실 묘역 가운데 가장 기품있는 ‘민망 왕릉’
민망 왕릉은 역대 왕실 묘역 가운데 가장 기품 있는 장소로 꼽힌다. 2㎞에 달하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지는 흡사 광장처럼 보인다. 능 순례의 출발점이 되는 이곳의 중앙에는 노란색 정자가 세워져 있다. 민망 왕의 송덕비를 품고 있는 비각(碑閣)으로 현지에서는 비딘이라고 불린다. 이곳에 오르면 묘역의 윤곽이 대강 드러난다. 크게 보면 원의 형태를 띤 묘역의 중앙에는 일직선의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서 현덕문(顯德門) 숭은전(崇恩殿) 명루(明樓)와 같은 전각들과 문(門)이 일렬로 서 있다. 하나의 건물을 지나면 문이 나타나고 또다시 건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는 중국 양식에 따라 묘역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모양과 색채, 세세한 장식까지 각각의 건축물 또한 중국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건설 당시 아시아를 주무르던 중국의 선진적인 기법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 같다. 2층 구조의 붉은 누각, 명루는 민망 왕릉에서 특히 주목받는 건물이다. 호수에 둘러싸인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왕도 즐겨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앙은 왕이, 좌우로는 문·무관이 이용했다는 세 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다.

민망 왕능 묘역은 야트막한 언덕에 있다. 능의 앞으로는 반달 모양의 연못을 조성해 풍수지리상 배산임수의 형태를 띤다. 왕릉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문,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직하고 분명함을 밝히다’라는 뜻으로 응우옌 왕들의 처세와 통치 덕목이었다.

독특한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카이딘 왕릉

흑백이 조화를 이룬 색감, 서양식 디자인의 건축물, 그리고 가지런히 늘어선 석상들. 후에를 소개하는 책자와 팸플릿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카이딘 왕릉의 모습이다. 1920년 공사를 시작해 11년 후인 1931년 완공됐다. 카이딘 왕의 재임 기간이 1916년부터 1925년이었으니 그가 죽은 후에도 무덤은 계속 만들어진 것이다. 묘역의 전체적인 모습은 유럽의 바로크 양식을 기반으로 중국과 베트남 식을 혼합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영향이 지배적인 다른 왕들의 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을 뽐낸다. 이렇게 독창적인 모습이 실은 프랑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전통문화가 무너져 내리던 베트남의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입구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프랑스에서 수입한 철제 문을 넘어서면 비로소 카이딘 왕릉이 시작된다.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회백색의 팔각형 정자다. 외벽은 물론 난간과 기둥을 수놓은 섬세한 조각이 감탄을 자아낸다. 내부에는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가 아버지인 카이딘 왕을 기린 송덕비가 있다. 정자 양옆으로는 문관과 무관, 말과 코끼리를 형상화한 석상이 늘어서 있어 여행자들이 사진 찍는 명소이기도 하다. 유심히 보면 문관은 신발, 무관은 맨발 차림인데 문(文)을 숭상하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카이딘 왕릉의 하이라이트인 천정궁(天定宮)이 모습을 드러낸다.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바로크 양식의 콘크리트 건물로 마치 서양의 어느 궁전을 보는 듯하다. 프랑스 방문 때 파리의 화려한 문화에 매료된 왕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카이딘 왕이 안치된 계성전(啓成殿)도 이 건물 안에 있는데 화려하기 그지없다. 도자기 파편을 이용해 모자이크 처리한 벽과 기둥, 금박으로 도배된 왕의 조각상 등 시선이 향하는 어디나 번쩍거린다. 정사보다는 사치에 관심을 기울이던 카이딘 왕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후에 왕궁은 응우옌 왕조와 흥망을 같이했다. 초대 왕인 자롱이 베트남 전역에 위엄을 과시할 목적으로 건설을 시작, 2대인 민망 왕 때 완성됐다. 출입구가 되는 오문(午門)과 깃발 탑을 필두로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건물 태화전(太和殿), 자롱 왕이 모친을 위해 지은 연수궁(延壽宮), 왕 아홉 명의 이름을 새긴 화로가 놓인 현임각(顯臨閣), 가로 13칸의 종묘 등 볼거리도 많고 건물마다의 사연도 깨알 같다.

꼼꼼히 보자면 반나절은 족히 지나갈 정도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남은 것이 이 정도라니 애초의 규모는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형형색색 燈·파스텔 색조 건물… 호이안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 투본강 어귀에 있는 도시다. 동네 규모는 아담하지만 15~19세기에는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수많은 전쟁을 거친 베트남에서 이처럼 과거가 오롯이 보존된 곳은 호이안이 유일하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의 호이안은 매혹적이다. 형형색색의 등(燈)과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이 빚어내는 정경은 구석구석 로맨틱함을 더한다. 특히 일본교(日本橋)가 그렇다. 내원교(來遠橋)라고도 불리는 이 다리는 교각에 얹은 분홍빛 건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1593년 호이안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들이 자신들과 중국인의 거주지를 연결하기 위해 지었다. 낮에도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지만, 조명이 더해지는 밤이 되면 더 붐빈다. 로컬들의 웨딩 촬영지로도 유명해 전통의상으로 멋을 낸 예비부부들이 많이 찾는다. 중국에서 넘어 온 화교들이 세운 ‘회관’이나 이 동네 부자들이 살던 ‘고가’들을 순례하는 것도 호이안 산책의 재미다.

노란색 외벽이 예쁜 떤키고가는 베트남 중국 일본의 3국 양식을 혼합한 전형적인 호이안 스타일 건물이다. 약 200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현존하는 호이안의 옛집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름다운 장식과 붉은 색감이 어우러진 푸킨회관은 중국 푸젠성에서 건너 온 화교들이 건축했다. 중국의 멋을 지닌 건물로 호이안 옛시가지에 세워진 화교회관 중 가장 멋진 건물로 인정받는다. 제사를 지내거나 모임에 사용되던 내부 역시 외관에 뒤지지 않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람 구경도 호이안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 팔짱을 끼고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화방에서 그림을 흥정하는 노부부 등을 보다 보면 호이안의 밤은 어느덧 깊어만 간다.

호이안에서 해 보면 좋은 것들

확실한 개성과 고유한 이미지 가진 베트남 호이안. 할 것은 물론 볼 것도 많고 살 것도 많은 곳이다. 호이안을 갈 요량이라면 이것만은 반드시 체크해 보자.
[여행의 향기] 사계절 휴양하기 참~좋은 다낭… 중세 프랑스를 만나는 바나힐스
호이안은 등(燈)으로 유명한 도시다. 밤이 되면 형형색색으로 거리를 밝히는 등불은 황홀하기 그지 없다. 기념품으로 구입하기에 좋다. 흥정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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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을 대표하는 만두반 바오박(일명 화이트로즈). 장미 모양으로 빚은 얇은 피와 새우를 넣어 튼실하게 채운 소가 어우러져 깔끔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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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지쳤다면 시클로를 타보자. 베트남에서 시클로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 호이안의 올드타운. 좁은 골목을 지나는 시클로의 느릿한 움직임에 몸을 맡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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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통 모자인 농을 쓴 현지인의 모습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저절로 카메라 셔터 누르게 된다.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촬영이 기본임을 명심하자.
[여행의 향기] 사계절 휴양하기 참~좋은 다낭… 중세 프랑스를 만나는 바나힐스
올드타운과 투본 강 사이에 있는 호이안 전통시장. 작지만 이국적인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다낭=글·사진 임성훈 여행작가 shlim1219@naver.com